1831년 12월 4일에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종기를 앓는 경과가 어떠한지를 묻고 자신은 아직 산중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지내는 일상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1년 12월 4일에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종기를 앓는 경과가 어떠한지를 묻고 자신은 아직 산중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지내는 일상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섣달의 눈 쌓인 추위에 상대의 건강을 묻고, 산중에는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초상으로 인하여 산을 나온 길에 인편으로 탐문하였더니, 어떤 이는 종기가 오래 낫지 않는다 하고 어떤 이는 거의 다 나았다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어떤 말이 옳은지를 모르겠더니 일전에 받은 딸아이의 편지에 종기를 앓는다는 말이 없어서 전해진 말이 잘못된 줄로 알았었는데, 또 이곳의 소상 일로 온 蘇井 손님의 말로는, 종기를 앓고 있어 후유증이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았다 하기에 의혹이 더 심하였다 하고, 딸의 편지는 가을께에 쓴 것이었으니, 우환이 편지가 출발하기 전후에 있어서 그런 것인가 짐작하였다.
딸이 시집으로 출발하는 것을 보낸 후로 소식이 두절되었는데 인사도 없이 외진 곳에 사는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정은 오히려 남아서 항상 답답해하며 탄식한다고 하였다. 또 딸의 편지에 자신과 사위는 소소한 질병이 많아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아비 된 자로서의 탄식을 다 말할 수 없다 하고, 다만 藥穉[이름에 ‘藥’ 자가 들어가거나, 현재 약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가 잘 지낸다고 하니 조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부모의 제사가 겨울 내에 있으나 여러 가지 길흉사에 구애되어 아직 산으로 돌아가지 못한지가 한 달이 되는데 산중 식구들이 계속 병을 앓는다고 하니 염려가 없을 수 없다고 하고, 산 바깥의 일이 연일 번거로운 바람에 정신이 혼란하여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어 쓰지 못한다 하면서 말을 맺었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