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6월 27일에 柳徽文이 申秉欽·申復欽 형제에게 경서를 읽을 때 한 글자 한 구절의 음과 뜻에 매달리지 말고 대의를 관통하여 익숙하게 음미할 것을 당부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1년 6월 27일에 柳徽文이 申秉欽·申復欽 형제에게 경서를 읽을 때 한 글자 한 구절의 음과 뜻에 매달리지 말고 대의를 관통하여 익숙하게 음미할 것을 당부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우선 봄에 보내준 편지에 답장도 못한 채 여름 석 달을 보내니 그리울 뿐이라 하고, 부모님 모시느라 독서에 열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자신은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더위 때문에 게으름이 발동하여 남에게 일컬을 만한 재미가 없이 지낸다고 하였다.
『논어』 「양화」 편 첫머리에 보이는 ‘陽貨見’의 ‘見’에 대하여 朱子가 따로 음을 설명하지 않고 『맹자』에서는 그 음이 ‘現’이라 한 데 대하여, 두 책에 설명한 것이 다른 데에 너무 천착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집주의 설명에 따라서 읽을 것을 권유하였다. 또 지금 大學의 ‘淫泆’을 禮記의 ‘淫液’으로 보는 부분이나, 中庸의 ‘형제지가’를 예기의 ‘특생지가’로 보는 견해는 매우 타당하지 않다고 하고, ‘厭然’의 ‘厭’을 장구에서는 ‘안[於簡反]’으로 설명하고。‘胡齕’의 ‘齕’을 집주에서 ‘핵으로 발음한다.[音核]’고 한 것은 송나라 때 표준음으로 종성을 통용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글을 볼 때는 대의를 우선해야 할 것이니 자잘한 차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하고, 더구나 이런 문제는 전체의 뜻을 넉넉히 이해하여 앞뒤를 관통하는 것이 요체임을 강조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수신인 申秉欽(1809-1869)은 본관은 寧海, 자가 彛仲이다. 思彦은 그 아우 申復欽을 가리키는 듯하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