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12월 26일에 柳徽文이 중뜰[中坪]의 미상의 수신자에게 맏아들의 담제를 지낼 때 제복과 띠에 누인 베[熟布]를 써야 함을 알려 주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1년 12월 26일에 柳徽文이 중뜰[中坪]의 某人에게 맏아들의 담제를 지낼 때 제복과 띠에 누인 베[熟布]를 써야 함을 알려 주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노쇠한 나이에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는데다 더구나 景仁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景源은 나이 쉰도 못 되어서 상중에 있으며, 상대는 늘 건강이 좋지 않아 약을 일삼고 있으니 마음이 허전해진 지 오래라 하였다. 이러한 때에 보내준 편지는 간곡한 뜻이 감사하지만 마음이 항상 슬프다는 말은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감하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은 반년이 되도록 濕腫으로 고생하는 자신과 달리 상대의 병이 깨끗이 나아가는 점이라 하였다. 또 상대의 둘째 아들이 공부하러 오는 뜻이 갈수록 견고하여 서로 감발하는 유익함이 있지만, 자신이 아는 것이 없어 도움을 줄 수 없다고 겸사하였다.
맏아들을 위하여 입는 禫服을 옛날에는 大喪 때와 같게 하였지만 요즘의 풍속으로는 素冠을 쓰지 않는다 하고, 검은 초립과 흰 갓끈에 대해서는 선유가 성복에서 온당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담복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였다. 상대가 물어온 것처럼 검은 갓끈은 무방할 듯하다고 하고, 의대를 누인 베로 하는 것은 예의 본뜻이 그렇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