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11월 15일에 기복 복제 중의 李秉遠이 柳徽文에게 지금의 한 가지 의론이 혹 순박함을 되찾을 징조일 것이니, 그 논의하는 자리에 귀 문중 여러분이 도외시하지 말고 참가하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1년 11월 15일에 기복 복제 중의 李秉遠이 柳徽文에게 지금의 한 가지 의론이 혹 순박함을 되찾을 징조일 것이니, 그 논의하는 자리에 귀 문중 여러분이 도외시하지 말고 참가하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항상 그립다 하고 상대의 건강이 조금 좋지 못하다니 자신의 일처럼 염려된다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동요되기 쉬운 본성 때문에 병과 용무로 늘 바쁘게 지내면서도 여러분처럼 마음대로 정양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이어서 이번 걸음도 일 때문에 나왔는데, 상대의 독서에 따른 소득을 듣고 싶지만 子强 형이 겸손하게 사양하고 상대방 또한 돌아보려 하지 않으니 평소에 생각했던 계획이 모두 허탕이 될 것이라 겸사하였다.
본론에서, 자신이 요즈음 의도한 일이 전혀 없었으나 이번 한 가지 의론은 혹 순박함을 되돌릴 징조가 될 것이라 하고, 피차가 마땅히 성사시켜야 할 것인데도, 상대방 문중 여러분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는 자신이 차지해서는 안 될 것을 모점하였기 때문일 것이지만, 평소에 바라던 일은 아니라 하고, 이에 알려 드리는 것이니 비록 병환을 조리하는 데 조금 방해가 되더라도 번듯하게 왕림하여 諸生이 실망하지 않게 해 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편지 내용에서 언급한 자강은 柳健休의 字이며, 이번 한 가지 의론이란 뒤의 諸生의 실망이란 말과 연결되는 말로, 高山講會를 여는 일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발신인 李秉遠(1774~1844)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며 埦의 아들로,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純祖 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년 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와 比安의 현감을 지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