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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31.4717-20180630.0131257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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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여강서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1
형태사항 크기: 36.5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1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가 여강서원(廬江書院) 수석 재임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의 병(病)으로 인한 면직(免職)을 요청하고 안심하고 조리할 수 있도록 처리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31년 11월 15일, 柳健休가 廬江書院 수석 재임에게 병으로 인하여 면직을 청하고 안심하고 조리할 수 있도록 처리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31년 11월 15일, 柳健休가 廬江書院 수석 재임에게 병으로 인하여 면직을 청하고 안심하고 조리할 수 있도록 처리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이다.
먼저 보내준 답장을 받으니 미안한 하교가 있기까지 하여 땀이 흐를 만큼 두렵다 하고 편지를 통하여 재거 중의 건강이 좋으며 날마다 강토하는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되니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우연히 걸린 감기가 점점 고통이 더하여 다시 사람 노릇할 가망이 없을 듯하다 하였다. 자신은 노둔하여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망령되게도 상대방만은 혹 알아주리라 여겨서 지금 마침내 실정을 꾸미고 모양을 내는 죄를 저지르니 가장 한스러운 일이라 하고, 다시 관용을 베풀어 안심하고 조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를 높이고 후진을 면려하여 백세의 성망이 한 지방에 진작되도록 하기를 천만 바란다고 하였다.
廬江書院은 1575년(선조 8) 안동 월곡의 오로봉 아래 백련사의 구지에 안동 사림이 힘을 모아 건립하여 퇴계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하였는데, 당시 안동의 첫 번째 서원으로 총 97여 칸의 규모였다. 1605년(선조 38) 대홍수로 유실되자, 그 다음해 북쪽 백 보 쯤 되는 곳에 같은 규모로 중창되었다. 1620년(광해군 12) 퇴계 선생의 고제인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양 선생을 추향하고, 1676년(숙종 2) 사액되면서 虎溪書院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학봉은 임천서원, 서애는 병산서원에서 주향하게 되면서 호계서원에는 강당만 남게 되었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는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류장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1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廬江 首席執事。 省式謹封。
謹承
惠覆。至有未安之敎。不勝惶汗。
仍審寒令。
齋居經履萬相。日有講討之樂。何等
慰仰。弟。偶然感冒。轉成添苦。似無
更起爲人之望。自憐奈何。弟之駑
下。曾不見知於人。妄謂惟執事或
能俯燭。而今乃冒以餙情僞貌之科。
最所深恨也。更願特賜寬容。俾得
安意調攝。而勉崇師道。策厲後進。
俾百年聲響。復振於一方。千萬竊
仰。餘。適撓甚。不宣。伏惟
諒察。謹候書。
辛卯 至月 十五日。弟 柳健休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