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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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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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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0
형태사항 크기: 23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0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류휘문(柳徽文)이 집안 조카뻘 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이장(移葬)할 때 참석하지 못한 불편한 마음을 전하며 별다른 이상이 없는지를 묻는 내용이다. 아울러 물어온 부사(祔祀) 절차에 대하여 회답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30년 2월 5일에 柳徽文이 집안 조카뻘 되는 인사에게 移葬의 대사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지 묻고, 물어온 祔祀 절차에 대하여 대답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30년 2월 5일에 柳徽文이 집안 조카뻘 되는 인사에게 移葬의 대사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지 묻고, 물어온 祔祀 절차에 대하여 대답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먼저 큰 일이 중첩되는 가운데 기한은 촉박하고 힘은 모자라니 불안한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서두를 연 뒤에 이장할 때에 참석하지 못하여 애통하고 답답하였던 마음이 편지를 통하여 조금 풀리었다고 하였다. 또 봄눈이 녹아 진흙탕이 된 이때에 모두 병은 나지 않았으며 십여 년이 되어 다시 나온 관머리에 다른 변고는 없었는지 묻고, 자신은 선영 가까운 곳에서 다시 초상을 당하여 슬픈 마음을 안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물어온 祔祀의 절차는, 小祥을 지내고 부사를 지낸다 하였는데, 朱子가 ‘殷나라의 절차를 고찰할 수는 없으나 주나라 때의 삼우나 졸곡의 절차가 연속하였던 것과 다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周禮를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高氏의 ‘禫祭를 지내고 부사를 지낸다.’는 설에 대해서도 ‘차마 神을 하루라도 돌아갈 곳이 없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뜻에 어긋난다 하고, 지금 사람들이 『오례의』에 따라 삼년상을 지내고 부사를 지내는 것 또한 禮의 본의가 아니라고 하였다. 더구나 대상 다음날이 할아비의 기일이라 하여 그 재명일로 미루는 것은, 이른바 ‘하루라도 돌아갈 곳이 없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래 졸곡 후를 가리키는 것인데, 오례의에 비해서도 하루를 미루는 것이니 미안한 일일 듯하다 하고 세세히 참고하여 처리하라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0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季溫 行史。
從叔 留龍田奉謝。 省式。
新舊大事稠疊。而期促力窘。憧憧
此懷。靡日不切于中。比來又成咫尺
相阻。且羨道將啓。不與之同臨。可痛
可鬱。而惟是紙面上消息。足使人
慰沃渴心也。春雪成泥。擧無觸
冒生病之端。而十數年棺和。莫
無意外災患否。從叔。密邇楸下。更
値喪餘。霣迫情緖。無容按伏。示諭
祔祀。儘有哀遑窘迫之患。而至若練
而祔。夫子雖嘗善殷。朱子謂殷時節
次。旣無可考。不若周之三虞卒哭。節
次相因。自有可據。則莫如且從周禮。朱子
又謂高氏譏禫而祔。有乖於未忍神之
一日無所歸之義。而高氏祥而祔。亦乖於
未忍一日無所歸云云。不記本文。大意如此。
據此。則今人之從五禮儀。三年而祔之
文。恐非禮意。況祥之翼日。旣値祖位
諱辰。又更遷就再明。則夫所謂一日無
歸者。本指卒哭後。而却比五禮儀。退似一
日。則恐渉未安。幸細加參量而
處之。置灰事。
爲雪所戱。而人
丁甚尠。恐涉
狼狽。奈何。餘。
因便凌遽。不
宣式。
庚寅 二月 五日。從叔 公晦 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