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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30.4717-20180630.01312570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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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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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0
형태사항 크기: 34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0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이병원(李秉遠)에게 보낸 편지로 『가범』(『家範』)의 내용과 『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그리고 『약중편』(『約中篇』)의 도설(圖說)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상변통고』(『常變通攷』)의 서문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30년 1월 25일에 기복 상중의 柳健休소호리李秉遠에게 『家範』의 내용과 『敬齋箴集說』, 『約中篇』의 도설 등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常變通攷』의 서문을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0년 1월 25일에 기복 상중의 柳健休소호리李秉遠에게 『家範』의 내용과 『敬齋箴集說』, 『約中篇』의 도설 등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常變通攷』의 서문을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세초에 상대의 형님이 조문 온 인편에 보내준 편지를 받고 스스로를 슬퍼하고 남을 애도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흐르는 눈물을 진정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곧바로 답장해야 했었으나 우제와 부사를 금방 마치고서 슬픔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중이었던 데다 뒤이어 병들어 앓느라 지금까지 지체가 되었으니 한스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아우의 상을 치른 후 문득 살아갈 뜻이 없어졌는데 때로 눈가리개 삼아 책을 보기는 하지만 시름만 그칠 뿐 달아난 정신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탄하였다.
『家範』에 대해서는 못난 사람에게도 묻는 성의에 대략 대답은 하였지만 채택해 주기를 바랄 수 없다고 겸사하고 도설에 대해서는 지난 편지에 이미 잘못되었음을 고하였으니 다시 거론할 수 없지만, 誠伯이 다시 말하고 있으니 땀이 흐를 정도로 두렵다고 하였다. 『敬齋箴集說』의 圖說을 논한 데 대해서는 吳氏의 설이 破碎한 의론임에는 동의하지만, 先生께서 장을 나누고 조별로 분석한 것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여 위와 아래는 채택하고 중간은 버린 다음 똑같이 덧붙이고는 다시 朱子의 가르침을 가지고 그 실수를 바로잡되 다른 말은 한 마디도 더하지 않았으니, 위로 선배를 모욕하지 않고 아래로 후학을 그르치지 않아 두 가지를 모두 온전히 하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約中篇』의 圖說에 대해서는 七情을 앞에 두고 通論을 다음에 안배한 것이 해로울 것은 없으나 칠정의 세목 아래에 각 조목을 붙이는 것은 本書에서 통론을 먼저 두고 칠정의 세목을 다음에 안배한 것과 순서가 거꾸로 되는 것이니 미안하지 않겠는가 하였으며, 約情과 合中은 똑같은 일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통론과 분류에 나누어 붙인 것은 의심스러울 듯하다고 하였다. ‘禮書’에 대해서는 일찍 시작하여 상대로 하여금 세세히 교감하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하며 성의와 정력을 다하여 수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고, 발문을 일찍이 부탁하였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의 체모에 서문이 없어서는 안 될 듯하니, 상대가 바로 그 적임자라 하면서 간곡히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心經解集抄』는 두서없는 글이지만, 날마다 정정하여 보내주기만 기다리는데도 아직 籤紙 한 자도 없으니 궁금하다고 하였다.
『家範』, 『敬齋箴集說』, 『約中篇』는 모두 大山 李象靖의 저작이며, ‘禮書’라고 칭한 책은 東巖 柳長源이 편저한 『常變通攷』이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秉遠(1774~1844)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며 의 아들로,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純祖 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比安현감을 지냈다.
편지 내용에서 언급한 誠伯은 柳致明의 字이다. 1777년에 태어나 1861년에 졸하였다. 본관은 全州. 자가 誠伯이며, 호는 定齋이다. 李象靖의 외증손이고, 아버지는 진사 晦文이며, 어머니는 韓山李氏이다. 李象靖의 문인인 南漢朝·柳範休·鄭宗魯·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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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30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蘇湖 經案 執事。
大坪柳弟謝狀。 謹封。
歲初。伏蒙伯氏尊兄臨弔。兼承惠問。所以自悼悼人之意。悽惋悲切。三
復釀
涕無以定情。迺知無入不自得者。要非庸人所及。而如老兄完養有素。豈
不如此間
碌碌隨緣耶。誠伯行。宜卽修書報謝。而磨[虞]附才訖。悲緖未定。賤疾
隨發。無以自力
遂致。闕然至今。以爲恨也。比日春候尙寒。伏惟
棣床進德日造崇深。弟。老不卽死。且見亡弟入地。忽忽無生意。時以書
冊遮眼。
要以止愁而遁魂散魄號召不上。奈何奈何。家範一二付籤。非有的見。只
欲粗答詢
蕘之盛意。而蒙示間有俯採。亦已過望矣。至於圖子。前書已告。自覺紕
謬。不必
復論。而誠伯誤將棄本持納。復辱申
諭。旋切惶汗。示諭諸家記錄文字。
疊見層出。不容盡刊。及敬箴圖。以時分地頭。節度準的。規戒禁防。立
圈而各以
類附云云。恐皆精審。不復敢以爲疑也。吳氏破碎之病。偶然拈出。而先
生垂訓。已
不啻丁寧。自幸或可爲千慮一得。而來諭却疑鄙說。有回護之病。懼然不
知所以
爲對也。然竊意先生旣以爲病。而亦復存之者。蓋以吳氏章分條釋。自成
一段文字。
旣採其上下。而掇去中間。有些未安。故一例附著。而旋以朱訓救正其
失。不曾加一辭
焉。亦見恭遜審密。上不侮先輩。下不誤後學。蓋兩得之矣。但此亦出於
一時臆揣。未
必累中盛疑。更賜提諭。不使終迷。如何。約中篇圖。先七情而次統論。
固亦
無害。然七目之下。若著條數。則却與本書。先統論次七目。倒却次第。
或無未安
否。且約情合中。只是一事。而分係統論彙分。亦似可疑。然未見圖樣。
不敢忘議耳。
禮書悔不早出。使高眼周複梳滌。積以歲年之久。忽忽流看而止。豈非千
古之
遺恨耶。然旣入是非林中。解免不得。幸極意致力。隨冗隨刊。
隨漏隨補。旋看旋正。不必以合席對勘。推委前却也。曾以跋文。
仰關尊聽。而更思之。此書體大。似不可以無序。環顧一世。無可
開口處。況深知此書。無如吾執事。誼分之厚。亦莫如吾執
事。雖欲辭之。其可得乎。此則當別有僉狀仰懇。而姑略以私布
焉。刊費季君主管十餘年。竟不見其成。來諭之及。冞增哽
愴心經解集抄。不成頭緖。日望訂正還擲。而
竟無一字籤標。不能不爲介介耳。餘。祝
益懋崇深。以慰瞻仰。不宣。伏惟
下照。
庚寅 正月 二十五日。弟朞服人 柳健休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