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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이한중(李漢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29.4728-20180630.01652570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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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한중,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작성시기 1829
형태사항 크기: 28.5 X 3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9년 이한중(李漢中) 서간(書簡)
이한중(李漢中)류휘문(柳徽文)에게 보낸 편지로 앞서 받은 편지에서 자신에게 했던 몇 가지 깨우침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아울러 연이은 면례(緬禮)와 초상으로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음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29년 11월 2일,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전 편지에서 자신에게 했던 몇 가지 깨우침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9년 11월 2일,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전 편지에서 자신에게 했던 몇 가지 깨우침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번 소식을 전한 이후 생활이 어떠한지 묻는 것으로 서두를 뗀 다음, 종질이 돌아오는 인편에 편지를 받았는데 지폭 가득 경계와 면려를 보내주니 자신에 대한 정성스러운 뜻이 아니고서 그럴 수 없으리라 하며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속세를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그러하다 하며 홀로 자고 일어나는 것이 이미 자신의 고질병이 되었으니 깊이 생각하여 고치려 해도 될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또 仙槎에 왕래한다는 말은 참으로 그럴 만한 점이 있지만 거기에는 속으로 붙인 뜻이 남의 비웃음을 살 것이므로 먼저 발설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듣고서 하는 말인지 물었다. 또 크게 다르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산천이 다르고 처신이 다르니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며 각자가 자신에 충실하여 여생을 마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였다.
딸아이가 오면서 출발할 때 ◘하였는데, 와서 보니 어미는 병들고 아이 또한 건강하지 못하니 불쌍하다 하고, 연이은 면례와 초상으로 몸은 피로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 예를 갖추지 못한다 하며 마무리하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9년 이한중(李漢中) 서간(書簡)

大坪 靜案 敬獻。
鹿門弟候狀。 謹封。
信后
德履更若何。從侄回。承審
惠覆。橫竪滿紙。警勉俱及。非於
我乎摯者。其能乃爾耶。似此棄蠢。
何以得此於高明。感幸感幸。然而
高明之不能愚隨俗。亦如愚之不能。高
明獨異何也。獨寐寤歌。已成膏肓。復
豈能熟思而可醫耶。往來仙槎。誠有
來喩者。不惟取其勝已。竊有所寓焉者。而
必爲人笑囮。故曾未敢先者。於何聽
聞而有喩耶。太不同之喩。是正乎諷乎。
山野異處。顯晦殊途。安得不不同。
無寧各自征邁。終其餘日而已。欲學
之喩。不但誠所不堪。亦所不信者。好笑
好笑。女阿其來臨發。而◘其居。旣來
母病。而子亦
不徤。憐憫憐憫。
奈何奈何。緬
禮喪餘。先
後接續。勞
感交幷。
身疲心憒。
强起呼倩。
略暴。不備。伏惟
照察。謹候上狀。
己丑 至月 初二日。弟 李漢中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