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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29.4717-20180630.01312570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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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9
형태사항 크기: 31 X 3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9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이병원(李秉遠)에게 보낸 편지로 형제분이 방문하여 문집 간행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집안의 변고(變故)에 도(道)를 위하여 자중자애하기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29년 7월 13일에 柳健休청하현에 재임하던 중에 아들의 상을 당하여 잠시 체임 중이었던 李秉遠에게 보낸 편지
1829년 7월 13일에 柳健休청하현에 재임하던 중에 아들의 상을 당하여 잠시 체임 중이었던 李秉遠에게 보낸 편지이다.[이 편지는 대야집에 ‘與李愼可 己丑’이라는 제명으로 실려 있다.]
찌는 듯이 심한 더위 속이라 부를 때가 아닌데도 문집 간행의 일로 마무리를 재촉하고 있을 때 형제분이 방문하여 열흘 간 토론하면서 일의 진행을 도와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하고, 그 덕분에 교정의 일에 흠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열흘 만에 아들의 원통한 祥期가 임박하여 떠나게 되니 금방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하여 서운한 마음을 풀 수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중로에 더위 때문에 塔洞[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 머물며 조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염려가 컸다 하고 지금은 집으로 잘 돌아갔으며 회복이 되었는지 물었다. 생각하니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어린 손자의 울부짖는 소리에 마음이 상하여 神采가 평일보다 많이 못해졌을 듯한데 道를 위하여 자중자애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쇠퇴하여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터이지만 아들마저 더위를 먹은 증세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 대신 조문을 보내지 못하니 한스러운 마음을 그칠 수 없다 하고 나중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며 편지를 맺었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秉遠(1774~1844)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며 의 아들로,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純祖 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比安현감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9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狀上。
李淸河 服座執事。 省式謹封。
省式。滿地炎蒸。非招呼期會之時。而徒以刊事莫重。校役方
急。敦速不置。乃蒙聯旆撥暑光臨。浹旬探討。喫盡無
限酸苦。遂使十年掃塵未了之案。一經大帚。頓減疵纇。
何感如之。但歲月無情。寃祥遽及。十日催哭。一朝告別。
街頭悵惜。豈以前期未遠而少弛也。續聞中路觸暑。留調
塔洞。何等慮仰。未審
還稅後。棣床服履理遣神勞。快臻佳境否。惟是孀啼
孺號。攪撼摧腸。實有裁節不下者。然竊瞯
神采。頓減平日。榮衛內損。亦可黙揣。幸乞爲道自愛。至
得難耐處耐得過。方是出尋常萬萬矣。勿泛勿泛如何。健休。
摧頹潦倒之狀。已稔悉矣。兒子亦宿暑未袪。末由替慰。歉恨何
極。餘。屈指恭俟後會。不備謹狀。伏惟
服照。
己丑 七月 十三日。弟 柳健休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