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 10월 18일, 李漢中이 柳徽文에게 장조카며느리의 초상과 집의 화재가 겹쳐 나는 바람에 그 간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음을 알리고 상대 형님의 장례에 대하여 조문하며 박실 새 사돈 집의 초상에 애통하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8년 10월 18일, 공복 상중의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장조카며느리의 초상과 집의 화재가 겹쳐 나는 바람에 그 간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음을 알리고 상대 형님의 장례에 대하여 조문하며 박실 새 사돈 집의 초상에 애통하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번 신행 편으로 오래 막히었던 소식을 자세히 들었는데 독서하는 체후가 더욱 건강하고 다른 식구들도 잘 지낸다 하니 다행이나 사위가 열흘이 지나도록 앓고 있다니 끝내는 회복되겠지만 혹 병이 다시 사납게 날뛰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안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때 인편에 문안 편지를 보내야 했으나 맏조카며느리가 痘症으로 세상을 버려 엎어지듯 바삐 산을 나갔었는데, 그날 밤에 옛집에 불이 나서 죽은 사람을 염습하기도 전에 집이 다 타버려 비참한 경황에 편지 쓸 겨를이 없었다 하고, 서운한 마음이 끝이 없다고 전하였다. 더구나 상대 형님의 장례가 지났는데 빈소에 달려가 곡배하지 못하고 또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하였다며 부끄럽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어제 새로 난 상에 대하여 장례를 치르고는 또 숙모의 면례를 계획하느라 그곳에 머물고 있으니, 산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아 날마다 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딸이 친정에 오는 것은 가을 이후에 기일을 잡았었으나 의외의 사고를 만난 데다 痘症이 사방에 번져 있으니 지금은 어린 것 데리고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며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박실[瓢谷]의 새 사돈집의 喪事는 일찍이 없었던 참극이라 하고 혼인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길 줄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며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