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1월 15일,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손자 안은 경사를 축하하며 자신의 딸은 출산 후 병고로 다른 걱정을 끼치지는 않는지 물은 후, 며칠 안으로 닥친 장례를 잘 치르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27년 1월 15일, 李漢中이 사돈 柳徽文에게 손자 안은 경사를 축하하며 자신의 딸은 출산 후 병고로 다른 걱정을 끼치지는 않는지 물은 후, 며칠 안으로 닥친 장례를 잘 치르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먼저 해가 또 바뀌니 복제 중에 새해를 맞는 서글픈 감상이 곱절이나 될 것이라 하고, 건강은 손상이 없으며 장례 일자가 가까워졌다고 하는데 어찌 견디는지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장례 때 외척으로서 말석에 달려가야 마땅한 도리이나 추위 속에 외진 산중에 사는 처지로 백여 리의 먼 길을 갈 수가 없다며 인정과 예의에 어긋남을 자탄하였다. 이어서 상대가 사는 곳에서 온 인편에게서 자신의 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해산한 날이 지금 며칠이나 되었으며 다른 후유증으로 걱정을 끼치지는 않는지 물었다. 또 이 출산 후유증에는 겨울이 가장 걱정스러운 법인데 땔감을 구하기 어려운 곳에서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하였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누구를 닮았는지 궁금해 하며 친할아버지를 닮으면 기쁜 일이지만 외할아비를 닮으면 안 될 것이니, 밤중에 불을 켜고 살펴보았는가 하고 농담을 건넸다.
끝으로 닥쳐온 장례는 슬픔을 누르고 근력을 아껴서 자신의 정성에 부응하기 바란다 하고 말을 마쳤다.
추신에서, 태백산 깊은 산중에서 지팡이 다듬을 재목을 구해 보낸다며 보잘것없지만 짚고 다닐만한 기구가 되기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柳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