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11월 9일, 李漢中이 사돈인 柳徽文에게 형님의 小祥이 지났는데도 인사를 차리지 못하여 부끄럽다는 마음을 전하고, 첫돌이 다가오는 손자의 성숙 정도를 물으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7년 11월 9일, 李漢中이 사돈인 柳徽文에게 형님의 小祥이 지났는데도 인사를 차리지 못하여 부끄럽다는 마음을 전하고, 첫돌이 다가오는 손자의 성숙 정도를 물으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간찰이다.
먼저 어느덧 한 해가 지나 상대방 형님의 소상을 지난달에 지났다며 심한 추위에 오래 앓던 병은 심하지 않은지 묻고, 자신은 마땅히 예를 차리고 정을 표하여야 하였으나 구애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니 자신의 일이 모두 이러하다고 자탄하였다. 사실은 외진 거처에서 인사를 일체 차리지 않고 지내니 사람 노릇을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그 때에 고향으로 가는 인편이 있었는데도 산중에서 지내느라 그런 줄 몰라 편지로 문안하지도 못하였으니 부끄럽다고 하였다. 한편 사위와 자신의 딸은 어떻게 지내며 그 젖먹이 아들은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데, 첫돌이 다가오는 지금은 숙성해졌는지 묻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슬픔으로 가을을 지내고 현재는 화로 가에서 추위에 떠느라 쇄락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지낸다 하고, 喪事 때문에 산을 나왔다가 대강 안부를 전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柳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