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4월 21일, 趙星復이 柳徽文에게 자신의 宗家 從叔의 장례 때 행상 길에 상대의 집에 들렀으나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하여 아쉬웠다는 뜻을 전하고, 『北遊錄』말미에 小識를 붙여 보내니 한 번 보시라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27년 4월 21일, 趙星復이 柳徽文에게 자신의 宗家 從叔의 장례 때 행상 길에 상대의 집에 들렀으나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하여 아쉬웠다는 뜻을 전하고, 『北遊錄』말미에 小識를 붙여 보내니 한 번 보시라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먼저 상대의 伯氏가 일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마음을 알아주는 벗과 같았던 형제의 애통이 어떻겠느냐 위로하였다. 장사를 오래도록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평일에 쌓은 학문의 힘으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기운을 아끼겠지만, 아끼는 마음에 더욱 면려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宗家의 從叔이 세상을 떠나 달포 전 장사를 지낼 때 행상이 상대의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정언 형에게 들렀던 사정을 말하고, 마침 상대가 우거에 나가 있어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어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仲協 형은 상대 집안에서도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또 그를 잃게 되었으니 인생이 어찌 이리도 부박한 것인가 하고 탄식하였다. 상대의 북유록은 병든 마음을 화창하게 열어주기에 충분하였으나 돌려주기에 바빠서 숙독하지 못하였다 하고, 만폭동 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였으나 다시 小識를 말미에 붙였으니 한 번 보시고 장독덮개에 쓰시라고 겸사하였다.
내용에서 언급한 백씨는 류병문(1776~1826)이다. 자가 仲虎, 호는 素隱인데,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또 正言 형은 柳致明을 말하고, 仲協은 柳致翊의 자를 들어 말한 것이다.
발신인 趙星復(1772~1830)은 본관은 漢陽, 자는 奎應, 호는 鶴坡이다. 아버지는 居善이다. 趙述道에게서 수학하였고, 李野淳, 姜橒, 李秉運, 李秉遠, 李仁行 등의 학자와 교유하였다.
수신인 柳徽文(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