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5월 8일, 金會運이 柳徽文에게 백씨의 상사와 종택의 겹친 상사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자기 집안의 상사와 겹쳐서 가볼 수 없는 사정임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7년 5월 8일, 金會運이 柳徽文에게 백씨의 상사와 종택의 겹친 상사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자기 집안의 상사와 겹쳐서 가볼 수 없는 사정임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오늘 인편에 알려온 소식으로 백씨 처사의 장사가 다가왔음을 알았다 하고, 형제이자 마음을 알아주는 벗으로서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비통함을 어찌 견디는지 걱정하였다. 장례 준비는 두서가 있을 것이지만 복제 중의 기력은 손상이 없는지 묻고, 또 이전에 잠깐 만났을 때는 쌓인 회포를 다 풀기도 전에 말에서 낙상한 일로 염려가 깊었는데, 집으로 돌아간 즉시 치료하여 회복하였는지 물었다.
장삿날은 기일이 지난 것 때문에 염려가 되더니, 다행히 인심이 순조롭게 귀결되고 날씨도 일을 치르기에 적합하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교분으로 보아 달려가 영결해야 하지만, 마을 내 지정의 喪故에 운구가 수백 리 밖에서 오는데, 지금 상여꾼을 준비하여 기다리는 중이라 형편상 성의를 다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宗宅의 상고에 대해서는 참혹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며, 그 본생가의 虞祭와 祔祀를 마치자마자 또 이 참경을 당하였으니, 척분이 있는 자신으로서도 기가 막힐 일인데, 더구나 지정 간의 상대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며 위로하였다. 浩汝의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만이라 슬픔이 절실할 터인데, 우거에 가 있을 때 두 곳의 부고가 와서, 돌아와 보니 이미 날짜에 미칠 수 없었다며 몹시 부끄럽다고 하였다.
백씨는 류병문(1766~1826)을 가리키며, 종택의 상사는 이해 3월 13일에 류휘문의 종형 류종문(1744~1827)이 세상을 떠난 일을 가리킨다. 류종문의 자는 漢卿이다.
발신인 김회운(1764~1834)은 본관은 義城, 자는 亨萬이고, 호는 月梧軒이다. 할아버지는 秋村 金翼漢이고, 아버지는 金始晋이다. 안동 임하의 추월리에서 태어나 雨皐 金道行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20세 때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進取에 급급하지 않고 성리서에 전념하였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