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3월 20일, 李漢中이 柳徽文에게 화답시를 보내고, 상대 손자의 정혼을 축하하며 사위가 왔다가 늦봄까지 있지 못하고 돌아가서 허전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병술년(1826) 3월 20일, 李漢中이 柳徽文에게 화답시를 보내고, 상대 손자의 정혼을 축하하며 사위가 왔다가 늦봄까지 있지 못하고 돌아가서 허전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봄 날씨가 다시 추워져 상대의 소식이 궁금하였는데 사위가 오는 편에 편지를 받고 새 거처의 생활이 여유로움을 알았으며, 특히 달뜨는 밤의 산봉우리와 계곡의 정자[至月夜群峰澗谷池臺]를 언급한 대목을 읽으니 맑고 차가운 기운이 전해진다 하고 다행한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상대가 이사한 후에 한 번도 제대로 문안하지 못하여 남 보기에도 의아할 것이라 하고, 편지를 받으니 더욱 부끄러운 마음이라 하였다. 지난 번 편지에서 廬山의 진면목을 몰랐을 것이라 한 비유에 대해서는, 소동파가 ‘여산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읊은 까닭이 스스로 여산을 지나가면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고,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는 뜻으로 상대의 시에 화답하기를,
野翁莫詑遊山多 시골뜨기 노인아, 산수 구경 많다 자랑마라
過看何似住看好 스치듯 보는 것이 어찌 살며 보는 것 만하랴
雖以顔曾才品高 안자나 증자가 재주와 자품이 높다고 하나
一見孔子那便到 공자를 한 번 만나고 어찌 그 경지에 올랐겠는가
라고 하였다. 또 딸아이는 근래에 심한 병은 면하였으며 시집보낼 계획을 그만 두었으니 이제 산중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 하고, 귀 손자의 혼처를 정하였다니 축하한다고 하였다. 사위가 도착하여 늦봄이 되기 전에 송별하게 되니 허전하다 하고, 춘양의 喪事를 언급한 후 조문을 빌미로 태백산의 진면목을 보러 올 것을 권유하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류휘문과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