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11월 9일, 南漢模가 柳健休에게 遺集을 교감하는 모임에 柳致明, 柳鼎文 형과 함께 참석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6년 11월 9일, 南漢模가 柳健休에게 遺集을 교감하는 모임에 柳正言, 晦則 형과 함께 참석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간찰이다.
먼저 여러 해 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 간절하다 하며 동지의 추위에 상대의 생활이 만중한지를 묻고, 자신은 지금 遺集 校勘의 모임 때문에 이곳에 온 지 며칠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淸安丈 형제분이 멀리 출타하였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관계로 모임이 뜻대로 되지 않을 듯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며, 그래서 심부름꾼을 보내니 부디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고, 또한 이 모임에 柳正言과 晦則 형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함께 와 주실 줄로 믿는다 하였다. 이번 행사는 몇 년이나 계획한 끝에 이루어진 일인데 이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몇 년이나 걸려야 이 일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먼 곳에서 온 자신과 같은 사람이 헛되이 돌아가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덧붙여 穉實 형에 대한 안부를 묻고 이 형 역시 함께 와 주기를 희망하였다.
유집을 교감하는 모임이란 損齋 南漢朝의 『損齋集』의 간행을 앞두고 친지와 문인이 모여 교감을 진행하였던 일인 듯하다. 『손재집』의 해제에 의하면, 立齋 鄭宗魯의 『입재집』이 준비 과정을 거쳐 1835년에 간행되었다는 점과 판본이나 글씨가 유사한 점으로 비추어 볼 때 두 문집의 판각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진행된 듯하다고 하였다.
淸安丈 형제분이란 소호리의 李秉運, 李秉遠 형제를 가리킨다. 이병원이 淸河와 比安의 현감을 지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柳正言은 柳致明을 가리킨다. 晦則은 류정문의 初字로, 나중에 齊文으로 고쳤으며 호는 壽靜齋이다. 穉實은 朴時源(1764~1842)의 字이다. 본관은 潘南, 호는 逸圃로 영주에 살았다.
발신인 南漢模는 생몰과 활동 연조 등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立齋 鄭宗魯나 好古窩 柳徽文 등 학자와의 왕복 기록으로 볼 때 18세기 초중기를 주 생애로 산 듯하고 字가 元禮라는 것이 확인되며, 『손재집』 간행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손재의 재종제 誠齋 南漢皓(1760~1821)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신인 柳健休(1768∼1834)는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류장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