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11월 18일에 柳徽文이 이생원에게 형의 초상 때에 위로를 보내 준 데 대해 감사하고, 염습 후 묘지를 마련하기까지 1달이 되도록 애통함을 추스를 수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6년 11월 18일, 柳徽文이 이생원에게 형의 초상 때에 위로를 보내 준 데 대해 감사하고, 염습 후 묘지를 마련하기까지 1달이 되도록 애통함을 추스를 수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자신의 오랜 허물 때문에 화가 동기에게 미치어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하고, 일찍 고아가 된 뒤로 의지하며 살아온 삶이 이제 영영 끊어졌으니 혼자서 세상에 살아 있을 날이 얼마나 될지를 자문하며 한스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형이 살아있을 때의 행적 중 전할 만한 것이 있어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었다 하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형의 평생을 상대방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더니, 지금 보내온 위장에서 죽은 이를 슬퍼하고 산 사람을 안타깝게 여긴 뜻이 또한 평범하지 않지만 이제 모든 것이 그만이라며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게다가 재앙이 거듭되고 상변이 겹쳐서 중협이 또 병마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가문의 액운이라며 애석한 마음을 뭐라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한 해가 저무는 때에 우애 있는 형제분이 독서와 정양으로 잘 지내며 아들 형제도 공부 잘 하고 있다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형님을 염습하고 입관한 후 묘지를 마련하느라 한 달 가량을 지내면서도 더욱 의지할 데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돌아가시던 날 저녁에 슬프거나 괴로운 뜻을 보이지 않았으며 제자들과 조카 손자들이 임종하면서 영결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종신의 여한을 면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다만 당내 친척들이 모두 30여리 밖에 있어 창졸간에 편지를 쓰느라 절친한 붕우들께 두루 미칠 수가 없었던 것이 부끄럽고 한스럽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