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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이병하(李秉夏) 외 1인 서간(西間)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26.4717-20180630.0165257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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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병하, 이병은,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6
형태사항 크기: 29 X 4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6년 이병하(李秉夏) 외 1인 서간(西間)
이병하(李秉夏), 이병은(李秉殷) 형제가 류휘문(柳徽文)에게 보낸 편지로 류병문(柳炳文)류치익(柳致翊)의 죽음을 위로하며 장례 치르는 날에 가서 영결(永訣)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26년 10월 27일에 李秉夏, 秉殷 형제가 류휘문에게 류병문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하여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는 날에 가서 영결하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6년 10월 27일에 李秉夏, 秉殷 형제가 류휘문에게 백씨인 류병문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하여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는 날에 가서 영결하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우리 유림이 불행하여 상대의 伯氏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며, 스승이 돌아가신 후로 이 지역 학자들이 의지하였던 원로는 백씨 선형과 상대를 포함한 여러분들이었는데, 지금 편지로 조문의 말을 쓰게 되다니 이것이 무슨 운수인가 하며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더구나 몇 해 동안 헤어져 있다가 점차 모여 사는 즐거움이 있어 그야말로 형제요 지기의 벗이기도 하여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존중하면서 함께 흥기하였는데 갑자기 천만 생각 밖의 일을 당하였으니 그 비통함이 범상한 형제간의 초상과는 다를 것이지만 이치로 살피고 슬픔을 절제하여 무익한 일로 유익함을 해쳐서 우애를 상하지 않을 줄로 생각한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복제 중에 상대와 상대의 조카는 건강을 잘 부지하며 둘째와 막내 상주도 허둥지둥하며 밤중에 길을 가지는 않았는지 묻고, 문중의 거듭된 화로 仲協 형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해서도 그 사람의 아담하고 개결한 조행을 다시는 만나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일찍부터 백씨가 아끼고 이끌어주는 후의를 입었으나 집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드물어서 마음속으로 늘 허전하게 생각하였다 하고, 이번에도 臨皐 書院에서 돌아오던 길에 객지에서 부음을 받아 가서 곡하지 못하였고, 돌아온 후에도 병든 노친을 오래 모시지 못하였던 끝이라 다시 금방 움직이기 어렵다는 사정을 전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장례를 치르는 날 광중에 가서 영결하여야 한다며 평일에 뵙고자 하였던 뜻을 어기게 되어 슬프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디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도 스스로를 아껴 식사를 많이 하여 장수를 비는 마음에 부응하라고 덧붙였다.
백씨는 柳炳文(1776~1826)을 가리킨다. 본관은 全州, 자는 仲虎, 호는 素隱이다. 아버지는 萬休이다. 柳長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문집 『素隱集』과 『完山世牒』이 전한다.
내용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언급한 仲協은 柳致翊으로 중협은 그의 字이다.
발신인 李秉夏(1780~1852)는 본관은 韓山, 자는 忠立, 호는 信庵이다. 할아버지는 約窩 李顯靖이고 아버지는 경{土+敬}이다. 학행으로 향내의 중망이 있었다. 안동 소호리에 살았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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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26년 이병하(李秉夏) 외 1인 서간(西間)

省式言。斯文不幸。
伯氏文丈。奄忽違世。痛哭何喩。敎席一空。吾道有山崩海
移之歎者。今幾年于玆。而所賴而扶持者。以
伯氏文丈之巋然若魯殿。而使僉執事。又有以先後之
也。況其德性深粹。器宇全完。宜有以享有遐算。以卒
究其晩暮飽飫之功。而未知緣何運氣緣何證祟。竟爲
此今日紙上相吊辭也。凡在吾黨後生。猶不勝安仰之慟。
矧惟幾歲分飛之餘。漸得連環之樂。征邁愽約。定
爲同床知已之友。足令一世。有所欽艶而興起焉。而遽遭
此痛於千萬意慮之外。其深哀切悲。不但爲尋常孔懷
之慽而已。一木就封。萬事成陳。不奈何處。直是奈何
不下。伏想觀理節哀。不以無益害有益以傷
友于之情於冥冥中矣。
服履節宣何如。咸哀亦得支持否。燮在倉卒。仲季
兩哀。俱得侍訣於淵氷之夕。無至有見星蒼黃之行否。
德門禍厄洊酷。仲協賢兄之亡。悲怛可言。病至經年。固
知鬼物嶊剝而後已。而文雅耿介之操。更何處得來也。切切溯念。
不比常品。秉夏伯氏文丈。早荷眷愛誘掖之厚。凡其嚮
想而��慕之者。何嘗一日忘哉。而地步稍左。承誨漸稀。一未剋
抱經操几以從頌焉。則每不勝惄如之恨而已。迺者蘭報。承在
臨皐歸路。而以其客地也。爲位一哭。
亦復闕如。歸後扶服之當不暇。而病
老曠省之餘。更動爲難。第當留待
臨壙之期。辜負平日見念之意。第切
悲愧萬萬。何敢望
曲恕耶。餘。未相見間
自愛加餐。庸副遐
禱。不備。謹狀。伏惟
服下察。狀上。
丙戌 十月 二十七日。李秉夏 秉殷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