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년 10월 6일, 李漢中이 사돈인 柳徽文에게 태백산으로 놀러 올 것을 권하고 딸이 다음 달 10일에 돌아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5년 10월 6일, 李漢中이 사돈인 柳徽文에게 태백산으로 놀러 올 것을 권하고 딸이 다음 달 10일에 돌아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지난 번 편지는 자세히 보았으리라 하고, 이웃 사람들 편으로 상대의 계집종들 사이에 의심스러운 병이 퍼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염려가 된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지난 번 姜擎厦를 만나 처음으로 초청한 일을 물어보았더니 아직 모르고 있더라고 전하고, 지금은 단풍이 좋고 국화가 끝나 산수 경치가 좋지 않을 때이니 자신도 흥을 타고 나서기 어려울 듯하다고 하였다. 태백산은 영남 사람들이 우리 산[吾家山]이라 하는데도 유람객들이 이 산을 찾지 않는 까닭이 기특한 것만 좋아하고 평범한 것을 버려서 소문을 듣는 자들이 도리어 그윽하고 침착한 것을 소홀하게 생각해서가 아닐까 짐작하였다. 그리고 상대는 옛날에 금강산과 강화도를 두루 여행하였으니, 이런 일들에 대해 남에게 양보할 처지가 아닐 터인데, 어찌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미치는 것을 순조롭고 절실하게 여기지 않는가 하며, 태백산 등산을 농담 삼아 권유하였다.
딸이 내달 10일 경에 돌아가려 하는데, 자신이 하는 일이 졸렬한 데다 한 겨울이라서 스스로 어려움을 불렀다고 하고, 자신의 일이 매번 이러하다며 탄식하였다. 또 사위가 자신에게 온 이후로 수석 간을 노닐며 여러 날 회포를 풀 수 있었지만, 자신의 소유도 아니고 들새처럼 길들이기도 어려우니 돌려보낸다고 하였다. 지금 고향에서 돌아가는 길이라 작별도 하지 못하니, 매우 서운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발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