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 7월 21일에 權應樞가 柳徽文에게 振五라는 지인의 초상에 관련하여 상대를 위로하는 한편 伯氏의 눈병에 차도가 있는지를 묻고, 『樊庵集』 간행소에는 즉시 문안을 해야 하지만, 병과 장마 때문에 아우를 대신 보낸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4년 7월 21일에 權應樞가 柳徽文에게 振五라는 지인의 초상에 관련하여 상대를 위로하는 한편 伯氏의 눈병에 차도가 있는지를 묻고, 『樊庵集』 간행소에는 즉시 문안을 해야 하지만, 병과 장마 때문에 아우를 대신 보낸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오랜 비와 병이 모두 지루하여 아무 즐거운 일이 없다가 이제 조금 안정되었으나 다시 가을 더위에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 간절하다는 말로 서두를 열고, 상대와 아들의 안부를 물으며 아들은 과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욱 공부에 힘을 기울이리라 짐작하였다. 또 상대 백씨의 조리하는 근황을 물으며 봄 사이 눈병이 점차 심해져 염려가 적지 않다고 하고, 振五가 요절한 것은 더욱 슬픈 일인데, 위로 어른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억제해야 할 상대의 입장이 더욱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 염려하였다. 또 상례를 교감하는 일은 끝났는지 묻고 장마와 더위에 피로가 많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봄여름 4, 5개월을 계속 종기를 앓느라 자리보전하고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물이 불어 사방의 산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아무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며 세상에 오래 사는 데 대한 탄식만 하고 있다고 하였다. 질녀 모녀 또한 장마와 더위로 괴로움을 호소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樊庵集』 간행소가 鳳停寺에 설치되었으니 곧바로 한 번 문안 인사를 가야 하지만 장마와 홍수의 장난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막내아우를 대신 보내는데,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문안한다기에 그 인편에 편지 한 통을 써서 인사를 대신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權應樞의 본관은 安東, 자는 幼徵, 호는 香廬이다. 포항 죽장면 立巖에 살았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