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 12월 7일 權應樞가 柳徽文에게 어린 손자를 잃어버린 일 등의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봄이 되면 한 번 오시기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인편이 없지 않았는데도 게으름이 고질이 되어 끝내 편지를 하지 못하였으니 부끄럽다 하며, 한 해가 저물어 추위가 점점 심해지는 때에 상대와 가족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둘째 아들의 혼례와 장조카의 과거 소식에 대해서는 경사라고 하며 축하하는 마음을 아울러 전하였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는, 며느리의 난산에 고심하였는데, 의약의 효험을 보는 듯하였으나 끝내는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기운이 빠진 데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으니, 노쇠한 정력에 아마도 세상에 오래 남아있지 못할 듯하다고 하였다. 매번 상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도 만날 수가 없고, 덩그러니 궁벽한 집에 홀로 앉아 상대하여 정담을 나눌 사람이 없어 독서로 마음을 다스리려 하여도 눈이 흐리고 정신이 피로하여 금방 읽은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하며 늘그막의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또 질녀에 대해서도 초가을 이후로 병을 앓고 있어 보기에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새봄이 되어 날이 길이 질 때 나귀를 타고 왕림해준다면 조손이 만날 수도 있을 터인데, 자신도 덩달아 그리운 마음을 풀 수 있을 것이라 은근히 권유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이 가구로 가는 길에 들러서 인사를 드리게 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權應樞의 본관은 安東, 자는 幼徵, 호는 香廬이다. 죽장리 立巖에 살았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뒷면은 1825년 1월 보름 경에, 柳徽文이 李漢中에게 ‘遯世’ 두 글자에 너무 집착하여 세상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것은 中庸의 ‘時中’에 걸맞지 않는 태도이니, 다시 ‘擇善固執’에 유의하여 공부하기를 권유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섣달과 정월에 보내준 편지는 모두 집에서 받지 못하였는데 벌써 해가 바뀌어 정월도 반이 지났다 하고, 남은 추위가 아직 심한 때에 건강이 좋지 않다니 매우 걱정스럽다며, 다시 병세와 가족들의 건강 및 신부의 근황을 묻고, 상대는 근자에 다시 鹿門山人이 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농사를 시작하는지도 아울러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근래에 동서로 떠돌아다니던 살림을 거두어 돌아왔는데, 지난번 앓던 咳嗽는 증세가 일정하지 않고, 예서를 교감하느라 일을 만들어 정신을 소모하다보니 매번 청한한 일상에서 지내는 상대를 생각하며 스스로의 녹록함을 탄식한다고 하였다.
편지 중에서 중용의 할 구절을 인용하여 처신의 절도를 삼겠다고 한 데 대하여 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대목이라 하였다. 중용에서 중요한 것은 ‘時中’이니 뭇사람과 함께 처하면서도 과불급이 없고 일정하므로 뭇사람과 달라지는 것이 중용이며, 일용 응접에서 일의 체모에 맞게 변화하여 함께 할 만하면 함께 하고 달리 할 만하면 달리 하는 것이 중용이라 하고, 그런데 지금 상대가 太白山의 산수를 사랑하여 밭을 갈고 우물을 파서 분수에 따라 살아가려는 것은 ‘遯世’ 두 글자에 너무 중점을 두어 결국은 자신과 세상을 잊으려는 것이니 중용에 지나치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다시 ‘擇善固執’에 맹렬히 착력하여 평이한 일상을 정밀히 살피고 정진하여 나아간다면, 장차 잔폐한 사람을 힘입게 할 수 있고 이 유학의 종자를 단절에 이르지 않게 할 것이니, 어찌 세도를 부식하는 한 가지 방도가 아니겠으며 세상을 피하려는 자의 큰 사업이 아니겠는가 반문하고, 거기에 유의할 것을 권유하였다.
수신인 이한중(1776∼1836)은 본관은 眞城, 자는 伯黃, 호는 鹿門居士‧紫峰居士이다. 경사자집을 읽고 大義를 통하였다. 딸이 호고와의 삼남 致朝에게 시집가서 호고와와 사돈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