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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24.4717-20180630.0165257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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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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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4
형태사항 크기: 29 X 3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1824류휘문(柳徽文)이 지난번 사빈서원의 모임에서 아들의 혼례로 먼저 자리를 뜨게 되었다고 전하였다. 또 곧 아이들의 신행과 폐백이 있는데 하나로 합쳐서 행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최치원(崔致遠)의 『계원필경(桂苑筆耕)』의 엉성함과 문장가로서의 최치원의 명성을 전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24년 11월 초10일, 柳徽文이 아들의 초례에 관련된 禮와 『桂苑筆耕』의 詩稿 및 최치원의 문장력에 대해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824년 11월 초10일, 柳徽文이 아들의 초례에 관련된 禮와 『桂苑筆耕』의 詩稿 및 崔致遠의 문장력에 대해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류휘문은 묘도에서 叔公과 만났을 때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 했고, 장남 柳致喬(1790~1862)와 막내 柳致朝(1804~1871)만 이야기를 나누어 아쉽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숙공 부인의 병환이 나아서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류휘문은 지난번 泗濱書院에 『密菴先生文集』을 교정하는 모임에 갔다가 먼저 돌아간 것은 아들의 초례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신행을 치르려 하는데 내일 며느리가 자신을 보고자 하여 그때에 맞추려고 한다고 하였다. 執笲의 禮는 신부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행하는 것인데 두 개를 합쳐 하나의 례로 하는 것은 어떤지 상대방의 의사를 물었다.
류휘문은 孤雲 최치원의 『계원필경』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시고를 보니 「潤州慈和寺」 1율은 『詩選』에 들어갔고, 「紅流洞」 1절은 『詩話』에 보이는데, 『계원필경』에는 모두 실리지 않아서, 그 疎漏함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篇首 열편의 賀表를 베껴 내었는데, 엉성하여 보기 어려우나 상대방의 요청을 받아서 小冊子를 드리니 또한 봉황의 깃털 하나는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하였다. 최치원은 東方에서 문장이 뛰어난 자로 晩堂의 사람들과도 견줄 만 하다고 하였다. 그의 글이 후세에 널리 전해져야 하는데 主文과 府伯이 보지 못 했다고 하니 그것이 泯滅되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 없어 두렵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류휘문(1773~1832)으로 본관은 全州이고,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아버지는 柳萬休(1739~1774)이고 자는 德甫이다.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厚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1832章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죽은 뒤였다. 저술로는 『好古窩集』이 있고 「冠服考證」, 「家禮攷證」, 「啓蒙攷疑」 등을 실은 별집이 있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塔洞 棣座 侍童。
錦浦 戚從 謹候。 謹封。
羨道半日之晤。殊未從頌。況只於
長季。而於叔公未也。歸來耿耿。有
非尋常別懷之比。更問觱寒。
聯牀硏養神佑。向日叔公閤憂。旋
已得關。種種慰賀。戚從。頃赴泗院矯
會。復以醮子先歸。已極勞碌。而又將
率去就親。蓋以其明日婦見。欲其及
時。而執笲之禮。以待入門。合兩度爲一
禮。粗爲通今之一端。未知如何。桂苑筆耕
弱冠時。常得見。而見其詩稿中。如潤州
慈和寺一律。入詩選。紅流洞一絶。見於
詩話者皆不載。亦見其有疎漏處。
向時只謄出篇首十道賀表。草率
難看。而旣承盛索。玆以合下
小冊子呈似。亦可爲觀鳳之一
羽耶。且念孤雲。是東方第
一家。若與晩堂諸子。竝驅齊
武。其傳宜廣。而
今日主文與吾
府伯。俱不得見云。
其不泯滅。而所
傳也者無幾。
是亦可懼也而。
餘。將發。聞有近
便。草此不具式。
甲申 至月 初十日。戚從 徽文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