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1월 11일에 李秉秀가 사돈인 柳徽文에게 상대 아들의 병을 걱정하고 임동에서 일어난 산지 시비에 대하여 시일을 두고 알아보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3년 1월 11일에 李秉秀가 사돈인 柳徽文에게 상대 아들의 병을 걱정하고 임동에서 일어난 산지 시비에 대하여 시일을 두고 알아보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번 江院에 갔을 때는 찾아가지 못하여 돌아와서도 서운하였는데, 상대가 선후를 따지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니 감사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하고, 다만 상대가 새해 초에 병으로 조리 중이고 아들이 거처를 옮긴 나머지에 사흘 동안 앓고 있음을 알게 되니 매우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또 갖가지 치료 경비가 부족할 것이니 의약이 멀리 있다는 게 근심이 되지만, 증세가 금방 나을 듯하다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부모님 모시고 새해를 맞으니 한결 같이 두려운 마음뿐이라 하고, 장가간 아들의 집은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마련할 길이 없으니 만약 20년 전에 성혼했더라면 혼례조차 치르지 못했을 것이라 농을 건네며 웃었다.
또 臨東의 어떤 사람이 경계를 넘어 산소 터를 잡은 일은 큰 괴변이라 하고, 마땅히 사실을 탐지해 보아야 하겠지만 송사가 일어날 일이 통탄스러우니 조금 틈이 날 때를 기다려 도모해야 할 것이라 하였다. 별지에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힘써 도모하겠지만 곤궁한 처지에 큰일을 기필할 수는 없을 것임을 걱정하였다.
발신인 李秉秀(1770~1834)는 본관은 固城, 자는 象文, 호는 蠖圃이다. 아버지는 周世로 안동 마뜰[午郊]에 살았다. 딸이 柳致喬에게 시집갔으므로 류휘문과는 사돈 관계가 된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