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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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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병탁,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3
형태사항 크기: 30.3 X 4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3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이병탁(李秉鐸)류휘문(柳徽文)에게 보낸 편지로 경상도 유림이 김성일(金誠一)의 사당을 촉석루 아래에 모시기 위한 행사를 가진다고 하니 함께 갈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23년 2월 16일에 李秉鐸柳徽文에게 晉州에서 경상도 유림이 鶴峯 선생의 사당을 矗石樓 아래 모시기 위하여 행사를 연다하니, 함께 갈 것을 제안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23년 2월 16일에 李秉鐸柳徽文에게 晉州에서 경상도 유림이 鶴峯 선생의 사당을 矗石樓 아래 모시기 위하여 행사를 연다하니, 함께 갈 것을 제안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학봉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다가 죽은 文忠公 金誠一의 호이다.
먼저 새해가 되니 그리움이 더하다 하고 지난번 인척 楊叟 편에 건강이 좋으며 가족들도 고루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음이 놓였다고 하며 요사이 범절은 어떤지를 물었다. 자신은 歲初에 紅疹 소동에 골몰하느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가 요사이에야 근심에서 벗어났지만, 그 때문에 공부에 대해서는 말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자신은 평소에 촉석루 아래 학봉을 향사하는 사당 한 칸이 없는 데 대하여 한탄하였었다 하고, 지금 듣자니 경상도 유림이 학봉을 봉안하는 행사를 가진다 하여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한 번 가서 행례를 구경하기로 작정하였다고 전하였다. 또한 상대도 문중의 천거로 가야할 것이라고 들은 듯하다며 출발하기에 앞서 기별하여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마침 양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龜尾를 들른다기에 인편에 부치려고 등불아래 급히 쓰느라 예를 갖추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용에 보이는 인척 楊叟는 李海應(1783~1871)의 자이다. 본관은 載寧이며 호는 江棲이다. 학행으로 향리의 중망이 있어 安東 座首를 지냈다.
발신인 李秉鐸(1760~1832)은 본관은 韓山, 자는 子木, 호는 癯翁이다. 부친은 俛庵 李㙖, 조부小山 李光靖이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3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新年懷想。一倍耿耿。頃
楊叟戚。詢審
靜履一向萬重。庇節勻
宜。仰慰十分。未知近日凡節
更一樣否。弟。歲初汨沒疹
憂。忘却添齒之感。近才脫
出憂窟。而志業因而荒廢。
日用事無足奉聞耳。
平日每歎矗石樓下無一間。
鶴爺妥靈之所矣。今聞慶
林崇奉之擧。不覺欣然聳
動決意扶衰觀禮矣。期
日稍退未遂計。然早晩當
一酬願欲。似聞兄亦以門
望當行云。若於人與兄。俱於樓見
矗石於禮奉鶴爺。則弟之所得。
不其多乎。臨行。幸相通奇。必與
之聯鏕
如何。適
楊叟
路入龜尾
故火下暫
候。不備
狀。
癸未 二月 旣望。弟 李秉鐸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