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단오 즈음에 黃磻老, 柳㶊春 등이 愚伏 鄭經世의 문집 속집을 간행하는데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측에서 2백전을 보내주자, 감사함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
1821년 단오 즈음에 黃磻老(1766~1840), 柳㶊春 등이 愚伏 鄭經世의 문집 속집을 간행하는데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측에서 2백전을 보내주자, 감사함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조의 비인 孝懿王后의 국상으로 온 백성이 슬퍼한다는 사실은 언급했고, 이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바라보고 있으니 그리움만 절실했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종손이 소매에 여러분의 편지를 넣고 먼 곳에서 와주어 기쁘게 편지를 뜯어 읽어보니 매우 감사하다고 했으며, 편지를 통해 단오에 상대방의 기거가 만중함을 알게 되니 우러러 위로됨이 참으로 지극하다고 했다.
이어 발신자의 안부 및 상황을 전하였는데, 객지에서 각각 잘 지내고 있으며 『우복선생속집』 간역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속집 간행은 斯文의 성대한 일이지만, 刻手가 많지 않고 물력도 부족해서 마치는 것을 우선은 쉽게 기약하지 못하니 이것이 매우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선조인 約山堂 趙光義(1543~1608)의 題詠은 草本에 분명하게 실려 있고 또 그것을 게판까지 했으니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어 이미 책에 넣어 장차 간출할 것이라고 알렸다. 상대방의 편지에서 속집 간행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주신 것은 일을 중히 여기는 도리에서 나왔으니 흠탄스러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했으며, 2백전을 보내주시니 간절히 생각해주시는 후의가 더욱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간단한 인사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편지에 언급한 정경세는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자는 景任, 호는 愚伏이며, 西厓 柳成龍의 수제자이다. 문과 급제 이후 관직이 이조판서, 대제학에 이르렀다. 사후에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고 文莊이란 시호가 추서되었다. 문장과 성리학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특히 禮學에 밝았다. 저서로는 『우복집』, 『朱文酌海』, 『喪禮參考』 등이 있고, 상주의 道南書院, 대구의 硏經書院, 강릉의 退谷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약산당 조광의는 한양조씨 12세로, 임진왜란 당시 창의하였고, 만년에는 장례원 판결사에 제수되었다. 정경세와 교유하며 읊은 시가 전한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