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1월 7일, 金經進이 류휘문에게 塔洞에서 떠날 때 청했던 글을 德用이라는 사람 집의 심부름꾼 편에 보내니, 한 번 웃고 다음에 좋은 시로 갚아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21년 1월 7일, 金經進이 류휘문에게 塔洞에서 떠날 때 청했던 글을 德用이라는 사람 집의 심부름꾼 편에 보내니, 한 번 웃고 다음에 좋은 시로 갚아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먼저 圉陽에서 이틀 밤을 함께 지낸 것이 한 해 전 일이라 하고, 오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새해를 맞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며 새해 이후 상대의 건강은 어떤지 아울러 백씨와 아들의 근황은 어떤지 물었다. 또 伴鶴臺와 武陵島는 본래 제일가는 명승이지만 지난 섣달만 해도 눈 내린 유리 강산으로 바뀐 모습은 없었는데, 한 달이 지나 상대가 거처를 그곳으로 옮기자 이런 좋은 경치를 선물해주니 이야말로 조화옹이 하는 일이라 하고, 흥 바람에 찾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은 하루도 달려가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겨우 얼어 죽지 않고 지내는데, 어느새 봄이 멀지 않아 늙은 나무에 꽃이 피려하니, 내일 아침이 올 한 해의 봄이라네[老樹生花意 明朝一歲春]라는 除夕詩를 읊었다며 여기서부터 약간의 감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백씨의 병이 더하고 아이의 눈병이 덜해지지 않아 고민을 말로 다할 수 없으며 자신도 이 병이 들어 거의 두어 달을 출입하지 않고 있는데 4, 5일 전부터 겨우 나아지는 듯하다고 하였다.
지난 번 탑동에서 출발할 때 청한 글은 창졸간에 쓰느라 글이 되지 않았는데 돌아와서 고쳐 써서 한 통을 베껴놓은 지 오래라 하고, 인편이 없어 보내지 못하다가 德用의 심부름꾼 편으로 전달하니 한 번 보고 웃으라 하며 나중에 좋은 시로 화답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 金經進(1767~1826)은 본관은 安東, 자는 時甫, 호는 白室이다. 아버지가 宗燮이니, 川沙 金宗德의 조카이기도 하다. 의성의 사촌에 살았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