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9월 2일 李周世가 금강산 遊錄을 돌려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전주류씨 생원 모모에게 보내는 답장
1820년 9월 2일 李周世가 금강산 遊錄을 돌려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전주류씨 생원 모모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의 錦陽에 거주하고 있는 발신자는 먼저 보내 주신 편지에 대한 배려와 고마움을 전하는 단락으로 시작한다. "장마와 더위가 몇 달 지속되고 오래 답답하던 때에 鼎 모자와 상대하여, 앙모의 마음을 이야기하나 나아가 뵙는 것은 아득히 기약이 없어 스스로 애타 동쪽을 바라보며 크게 탄식할 뿐입니다. 뜻밖에도 보내주신 편지가 문득 이르러 여러 차례 손에 들고 완상하니 황홀하게 맑으신 모습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감사하던 끝에 장마가 물러나고 서늘해지는데 지내시는 기거가 만중하심을 알았으니 어떤 위로와 축하가 이와 같겠습니까. 저의 식솔들의 우환은 날이 서늘해지면 절로 소생하여 떨쳐 낼 것입니다. 鼎의 모자는 다행히 멀리서 보내시는 가피를 입어 보존하며 탈은 면했으나 穉兒의 과독은 슬하에서의 敎導를 온승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이것이 한 가지 흠입니다."라고 하였다.
둘째 단락에서는 자신의 상황과, 교정을 부탁받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산 遊錄을 그냥 돌려보내는 아쉬움과 구담 행차 때 찾아주지 않은 섭섭함과 새집을 낙성한 것에 대한 축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퇴락하고 고단한 날이 심한 가운데 근래 손부가 산후 우환으로 의약에 골몰하여 달포 만에 조금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날을 보내고 있으니 어찌 들을 만한 조금의 재미가 있겠습니까. 遊錄이 먼지 쌓인 책상에 오래 지체되어 여러 차례 펼쳐 읽어보았으나 萬瀑洞의 연무(경치)를 누가 좌우처럼 총명하게 기억하여 마음속에 간직해두겠습니까. 책을 덮고 집으로 보내는 것을 잊으니 당초 보지 않은 사람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제 또 온전히 돌려보내니 안개 속의 강산이요 꿈속의 이별입니다. 슬퍼하고 탄식한들 어찌하겠습니까. 龜潭에 행차를 머무시는 것 또한 한 차례의 勝會나 문을 지나 내왕하는 곳이니 어찌 감회가 없겠습니까마는 한번 들려 좋은 걸음하시지 않으시니 소위 ‘그대가 丈者를 거절한 것인가? 丈者가 그대를 거절한 것인가’하는 것으로 한번 웃음 짓게 합니다. 新基의 새집은 참으로 큰일인데, 어찌 축하가 없겠습니까. 나아가 편하게 잠자고 꿈을 점치는 조짐을 함께 찬송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편지에서 손녀를 돌려보내라는 명에 따르려니 오래 함께 했던 끝에 마음이 몹시 섭섭하니 조금 더 머물게 하다가 보내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손녀는 명하신 대로 入宅전에 돌아가 모신다면, 오래 머물던 끝에 인정상 섭섭할 만 합니다. 어찌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종이를 앞두고 있으니 새삼 슬퍼집니다. 병 때문에 불러 적어 이만 줄입니다. 삼가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답장편지를 써 올립니다."
발신자 李周世(1742~1824)의 初名은 宗和이다. 자는 猶汝이고 號 柳下이고 본관은 固城이다. 尙慶에게 출계했고 생부는 餘慶이다. 과거공부를 폐하고 성현의 서적을 탐독하여 大山 李象靖은 장차 정통학파를 전승할 큰 인물이 될 기대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柳下遺稿가 전한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