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12월 26일, 李秉運이 柳徽文에게 휴가를 맞아 자신과 자신의 아우 형제가 귀근해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도내 일의 경과를 염려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8년 12월 26일, 李秉運이 柳徽文에게 휴가를 맞아 자신과 자신의 아우 형제가 귀근해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도내 일의 경과를 염려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보낸 간찰이다.
먼저 오래 소식이 끊어져 그리움이 세모에 더욱 절실하다며 우거하는 중 상대의 건강과 아들 및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묻고, 삼현 여러분들의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벼슬살이로 4도를 떠돈 지 1500일 여에 돌아와 어버이를 문안하였는데 우선 큰 우환을 면하고 계시니 자신의 피로는 말할 것이 없다 하고, 근래에는 또 막내아우가 휴가를 받아 귀근하여 함께 어버이를 모시는 즐거움이 크다고 하였다. 도내의 일이 또 파랑을 겪으니 두렵다고 하며 저쪽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쪽의 대응도 적절하지 못하여 끝내 저들에게 동요를 입었으니 마지막에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설 이후의 모임이 멀지 않으니 그 때 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고 말을 맺었다. 추신으로 새 달력 1건을 보낸다 하고 한들[대평]은 큰일이 있은 후 아직 소식이 없는데 한 번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 처지가 매우 비참한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대신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모두 같을 것이라 하며 향후의 일은 더욱 차마 말할 수 없다고 비통해하였다. 또 지금 보내는 여러 통의 봉함과 달력은 택호를 알지 못하니, 달력은 益之와 景範에게, 돈과 편지는 瞻仲 어른께 나누어 전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발신인 이병운(1766~1841)은 본관은 韓山, 자는 際可, 호는 俛齋이다. 조부는 大山 李象靖, 아버지는 校理 李埦이다. 187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97년에 혜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감역, 감찰을 거쳐 함창 현감이 되고, 1818년에 경기전령, 1820년에 청안 현감을 지냈다. 문집으로 『俛齋集』이 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