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12월 8일에 柳徽文이 동족 미상인 여러분에게 형인 柳炳文이 편집한 『完山世牒』을 보내면서 그 중 요긴한 부분을 채택하여 향후 새로 수정할 족보에 등재함으로써 의심이 들었던 부분을 변파할 수 있도록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
1817년 12월 8일, 柳徽文이 동족 미상인 여러분에게 형인 柳炳文이 편집한 『完山世牒』을 보내면서 그 중 요긴한 부분을 채택하여 향후 새로 수정할 족보에 등재함으로써 의심이 들었던 부분을 변파할 수 있도록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가을 무렵 만나서 친족으로서의 정의를 나눈 것은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도 그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며, 한 해가 저무는 이때 건강을 물었다. 자신은 지난번 강화도에 들어가 고려사 등의 서울 문적을 검토하였다 하고, 불타 없어진 고려대의 문서를 얻어 볼 수 없어서 한탄스러웠으나 全州柳氏가 文化柳氏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문적의 유무를 떠나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지난번 『高麗史』 및 『輿地勝覺』 등의 여러 책을 참작하여 논지를 편 데 대하여 상대방이 보고자 하여 이 때문에 약속이 없이도 만날 수가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고, 지금 여흥에 사는 종씨 편으로 자신의 가형 炳文이 엮은 『世牒』을 여러분들께 보내드리니, 이것을 寧邊의 종장과 恩津의 문학공파 여러 종씨들에게 돌려 보여서 취할 만한 점이 있으면 또한 여러 종씨들과 의논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향후 문중에서 새 족보를 수정할 때 『晉州柳氏族譜』에 이른바 辨破錄을 쓴 것처럼 요긴한 말을 채택하여 책 말미에 등재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