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2월 19일에 李學秀가 자신의 아들을 상대의 東床에 보낸 마음을 전하며 사돈이 될 집안에 보낸 편지
1817년 2월 19일에 李學秀(1775~1830)가 자신의 아들을 상대의 東床에 보낸 마음을 전하며 사돈이 될 집안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는 정중한 안부인사로 시작한다. "廬江에서 봉별하고 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새삼 깊어집니다. 삼가 묻사온데, 봄추위에 침상을 나란히 하여 책을 읽고 사색하시는 가운데 건강은 신의 도움을 받으시며, 아드님과 집안의 문아하신 분들 모두 좋으신지요."라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집안 정황을 전하며 "저는 용렬하여 들려드릴 것이 없고 숙부는 이전 모습과 같습니다만 중부는 잘 조섭하고 있는데, 근래 천연두의 걱정이 다단하여 고민되고 고민됩니다."라고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다음은 편지를 쓰는 이유를 기술하면서 "아이를 東床에 보냈는데 그 어리석고 비루한 모습이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부끄럽게 합니다. 그가 갈 때에 일찍이 분부하고 부탁한 말이 있었으나 과연 능히 가르침의 자리에 절을 올리고 물 뿌리고 청소하는 일을 이바지 할 수 있겠습니까. 외람되이 下交의 끝에 있는 자로, 매번 끊임없이 주선하여 청설하는 초평(初平)이 되고자 했으나 다만 포기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단지 그 아들에 기대하는 것이 도리어 자신을 탓하는 것보다 낫겠습니다. 그러므로 몰래 혼인에 맡기는 것은 의도가 또한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용광로에 거두어 두시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그 몽매한 어리석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 군자가 成物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어떠하고 어떠하신지요. 長公 좌하께는 별도로 인사편지를 못하여 嚮德에 성의가 없으니 참 부끄럽습니다."라고 못난 자식을 잘 봐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추록을 붙여 "象文從兄이 어제 비로소 돌아와 모시고 있습니다. 열 번 일어나는 근심이 사는 문으로 향하는 것 같아 조금 고민이 풀어집니다."고 하면서 상대의 걱정 속에 있을 사람이 앓고 있는 투병 경과를 전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발신자 李學秀(1775~1830)의 자는 聖民이고 호는 易俟齋이며 본관은 固城이다. 李蓍秀(1790~1849)의 육촌형으로, 世德誌에 따르면, 安東에 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저서로는 易俟齋遺稿가 전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 정축년은 1817년으로 확인할 수 있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