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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15.4717-20180630.0131257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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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5
형태사항 크기: 33.5 X 4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5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이병원(李秉遠)에게 보낸 편지로 먼저 보내준 편지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안부를 물었다. 아울러 벼슬의 여가에 독서와 함양에 정진하기를 부탁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15柳健休東陵參奉으로 봉직하고 있던 李秉遠에게 먼저 기억하여 편지를 보내준 데 대하여 감사하고 안부를 묻고 전하는 한편 벼슬의 여가에 독서와 함양에 정진하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5柳健休東陵參奉으로 봉직하고 있던 李秉遠에게 먼저 기억하여 편지를 보내준 데 대하여 감사하고 안부를 묻고 전하는 한편 벼슬의 여가에 독서와 함양에 정진하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본폭의 내용으로 보아 별지가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먼저 재실에 거처하며 경전을 읽는 생활이 재미가 있다는 데 위안에 된다하고 옛사람이 奉檄하고서 기뻐한 것은 어버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며 상대를 격려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쇠약함과 나태함이 날로 심하여 붕우에게 부끄러움을 끼칠까 두려움으로 지낸다고 하며 겸사하였다.
이단의 邪說이 점점 멋대로 유행하는 세태와 관련하여서는 진실로 근심스럽고 통탄할 일이나 본래 佛學의 영향에 비롯한 것이니 부박한 무리들에게나 유혹이 될 것이라 하고, 우리 영남의 후배들은 선선생(大山 李象靖을 가리키는 말)의 가르침이 몸에 배었으니 서로 이끌어 물에 빠지듯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오히려 이 때문에 사방의 기대가 영남에 있고 영남의 기대가 상대방 같은 학자에게 있으니 더욱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가학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東陵은 예로부터 저자와 조정이 멀리 떨어져 있어 독서와 정양에 좋아 벼슬자리로 가장 좋은 곳이라 하고, 자신이 들은 바로 상대의 부친이 벼슬할 때에 매번 公朝에서 퇴근하면 단정히 앉아서 글을 읽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본받아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정진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별지에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평이한 서술과 전아한 문장이 자신의 병폐를 구료하는 약이 될 만하였다고 하고 그러나 혹 의견이 다른 부분이 없지 않아 조별로 의견을 말하였으니 살펴보아 달라고 하였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秉遠(1774~1844)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며 의 아들로,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純祖 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比安현감을 지냈다.
내용에서 언급한 선대부 존장이란 李埦(1740~1789)을 가리키는 말로, 자는 치도(致道), 호는 간암(艮巖)이다. 1774년 문과에 급제하여 1777년(정조 1) 厚陵別檢에 임명되고, 1786년에 6품에 승진하여 지평이 되었으며, 1789년에는 정조가 이상정의 학덕을 추념하여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하였다. 그 뒤 서학 교수에 임명되었으며 현릉과 융릉을 조성할 때 왕을 호종하면서 노숙하다가 병이 들어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간암집 9권 5책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5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東陵直中 經案 執事。
閒坪 損弟 謹謝狀。
自聞執事。蒙
恩筮仕。卽欲奉書致意。每失偵便。因循未果。而西駕
已戒。音塵益遠矣。數舍通問。猶不以時。動經半年一歲。
況落落在千里外乎。且念前書謬妄。無轉樞之美。而有
守株之固。誠恐自外於直諒多聞之益。乃蒙不校遠垂記
存。滿紙縷縷。殆若誘掖獎勵。可與偕之大道者然。納汚
包荒之量。果非常情所及也。仍審彼時
齋居經履。味道增腴。深庸仰慰。惟是離違曠疎之歎。
固應如此。然古人奉檄之喜。正爲榮親地耳。抑何異於
晨夕
膝下耶。弟。衰朽頹放。日甚一日。決知終爲朋友之羞。用
是懍惕不自安耳。示諭邪詖肆行。擧世長夜之
漸。誠可憂歎。然彼說本出於瞿曇之下。僅足以誑誘浮
薄無行之流耳。至如吾嶺後輩。固無足以塞厚望者。然
自是鄒魯之鄕。況
先先生遺敎。浹於人心。及門諸賢。尙有存者。何遽有淪胥懷
襄之慮耶。所以四方之期望。特在於吾嶺。吾嶺之期望。尤在
於吾兄。切願益進竿步。以爲息邪拒詖之本。使家學
有所賴而不墜於地。則雖以健之無似。敢不承下風。而備數
於初平哉。古稱祠官。最是仕宦佳處。爲能遠市朝屛紛
華。便於讀書養靜也。似聞東陵頗有遊從應接
之煩。聲利海中。易以溺人。幸望百尺危棧。不差一跡。
千里逸駕。不輟一步。勤勵而勿異於衆。鞱晦而勿流於
俗。如何如何。嘗聞
先大夫尊丈從宦時。每公退。未及就坐而先開卷。此正
今日受用處。竝以爲獻。此皆吾兄茶飯。何待人言。
而愛慕之至。敢陳不逮之規。千萬諒察。別紙誨諭。
平鋪典雅。其所警勉。無非拔肓之劑。敢不敬服。
而奈此八萬毛孔。一齊受
病。殆非一丸一散所可責
效。幸續惠良方。使烏
頭之力。浸漬而不去。則尤何
感篆如之。其間尙有未盡
脗合處。不免抉摘條稟。
或賜垂恕否。書末相見
未易期。遄惠千里面之論。良
荷不遺之厚。何敢故爲此稽
滯。而家間連有醫藥之擾。
門親姻戚。窆埋相續。汨
於奔問。了無閒靜時日。今始
偷隙修報。而又未知幾時得徹
凡下也。徒有心旌向風搖搖
而已。惟願
進學有相。旅候錢迓毖
重。姑此不宣
兄照。謹謝上狀。
乙亥 至月 念八日。弟 柳健休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