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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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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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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휘문, 류건휴, 류소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4
형태사항 크기: 29.5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1814년 6월 15일에 류휘문한들[大坪]의 족숙 류건휴, 소휴 형제에게 상대의 저술에 대해 논의하고 『중용』의 ‘부도불문(不睹不聞)’ 설에 대하여 질의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가 『천사집(川沙集)』을 잘 읽은 것에 경탄하며, 상대의 저술인 『계호학적(溪湖學的)』은 다 일지 못하였다 하였다.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와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의 내용에 저작의 시기와 관련한 차이가 있다고 한 상대의 견해에는 동의를 표하였다. 또 『中庸』의 ‘不睹不聞’ 의미에 대해서는 깨우쳐 준 뜻이 간곡하고 지극하지만 아직도 석연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다시 가르침을 구한다고 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

상세정보

1814년 6월 15일에 柳徽文한들[大坪]의 族叔 柳健休, 韶休 형제에게 상대의 저술인 『溪湖學的』은 아직 다 읽지 못하였으며, 『儀禮經傳通解』와 『朱文公家禮』의 내용에 저작의 시기와 관련한 차이가 있다고 한 상대의 견해에 동의를 표하고, 『中庸』의 ‘不睹不聞’ 설에 대하여 다시 질의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4년 6월 15일, 柳徽文한들[大坪]의 族叔 柳健休, 韶休 형제에게 상대의 저술인 『溪湖學的』은 아직 다 읽지 못하였으며, 『儀禮經傳通解』와 『朱文公家禮』의 내용에 저작의 시기와 관련한 차이가 있다고 한 상대의 견해에 동의를 표하고, 『中庸』의 ‘不睹不聞’ 설에 대하여 다시 질의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초봄 무렵 받은 편지의 뜻이 정중하여 세 번 거듭 읽고서 옷깃을 여미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참혹한 상사 때문에 골몰하느라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으므로 답장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지난번 편지로 『川沙集』을 공부하고 있음을 알았었는데 湖門[大山 李象靖을 지칭하는 말]에서 학자를 위하여 힘껏 표창하고 권면하였던 것이 ‘居處恭·執事敬’의 공경 공부였다는 말을 듣고서 전현의 지결이 유래가 있으며 상대가 그것을 잘 읽었음에 깊이 경탄한다고 하였다.
또 『溪湖學的』은 토론하려고 하여 한가한 시간에 한 번 훑어보았으나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교정 보충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고, ‘居寢은 廟制와 같다.’는 것은 『儀禮』에 보이는 말로, 『朱子大全』의 〈儀禮釋宮〉 편이 모두 『의례』 중에서 채택하였는데, 『儀禮經傳通解』는 朱子 만년의 편서로 『朱文公家禮』보다 30여 년 나중에 저술한 것이므로 『가례』에서는 미처 개정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고 한 상대의 말이 진실로 일리가 있다고 하였다. 또 ‘부도불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깨우쳐 준 뜻이 간곡하고 지극하지만 아직도 석연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일일이 진술하여 가르침을 구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수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유장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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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류휘문(柳徽文) 서간(書簡)

大坪棣案 下執事。
三峴 族姪 答狀。
春初續承
惠覆。意寄鄭重。且其日用澆灌之餘。復此餘潤之
及人。三復感浣。不覺斂袵而欽服也。第承拜未幾。遭此
非常慘毒。悲遑滾汨之中。精神科擻不得。便成
有問無答。積有月日。近方搜得於篋笥中。怳若
新承誨晤。仍審向來工夫在川沙集中。伏想
觀書味學。日有新得。而承示川沙學問宗旨。專以
容貌辭氣。視聽言動。居處恭執事敬。爲入斯處。
蓋湖門晩來力爲學者。表章而警勉之者。尤在於
此。深歎前賢旨訣之有自。而亦仰座下之眞善
讀也。顧此喪威震剝。舊業荒廢。如徽文者。尙何
論哉。學的。竊擬討出閒靜時辰。一番看過。而卒業
猶未易。況敢以讐校補刪之役。率爾自當耶。居寢
同於廟制。本見儀禮。而大全釋宮。皆是采摭儀
禮中。冠昏喪祭。在廟行禮時。其名物制度。往往因事
以見者。而註疏家旁引曲證。亦靡不收輯。則是篇所載。本
以廟制爲主。而居寢之制。因以附見。且其零星揍合。彙
爲一通。而蓋其全文。則經傳無傳焉。家禮
所言。古之廟制。不見於經者。蓋以此也。又儀禮
通解。最是先生晩歲編輯。距家禮旣成後。
殆三十年。則釋宮之復於家禮。亦可見矣。而來
敎所云。家禮之未及追改者。誠爲有理。不睹
不聞之義。再煩指誨。所以警發
迷昧者。勤且至矣。而觝滯之見。尙
有終未融釋者。玆復縷縷陳
達而求敎焉。殆近於朱子
譏呂家之學。重於守舊。然亦非
敢出於回護。幸望復賜鐫誨。務歸至
當。千萬千萬。餘。祝
靜養崇深。以副嚮迬之忱。不備。伏惟
下照。狀上。
甲戌 六月 十五日。族姪 徽文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