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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14.4717-20180630.0131257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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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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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4
형태사항 크기: 34 X 5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4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이병원(李秉遠)에게 보낸 편지로 학문상의 진취를 당부하고 질의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14년 8월 10일에 柳健休소호리李秉遠(1774~1844)에게 학문상의 진취를 당부하고 질의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4년 8월 10일에 柳健休소호리李秉遠(1774~1844)에게 학문상의 진취를 당부하고 질의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가을이 완연한 이때에 상대를 만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탄식하던 중 이웃 인편으로 두 차례 편지와 별지 3폭, 강의 한통을 받았다 하고, 그 문장과 의리를 보니 자신이 평범하게 논평할 내용이 아니며 붙인 뜻이 고매하고 원대하지만 말을 알고 사람을 살피는 데 미진한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다. 그러면서 세상에 안으로 자신을 닦으면서도 바깥을 연모하지 않고 깊이 기미를 궁구하면서도 작은 데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겸사하고,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시속의 잘못된 기습이니 진심으로 사귀어야 할 처지에 그런 잘못된 태도를 보이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이어서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伯氏와 함께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근황에 대하여 매우 마음이 놓인다고 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노경에 임박하여 배운 것이 없음에 대하여 한탄하고 있다고 겸사한 후, 상대의 편지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상대의 논급에 대하여 대체로 다시 평론할 것은 없으나, 간혹 동의하지 않는 점이 있어 다시 별폭에 조별로 서술하니 기탄없이 비판해달라고 하였는데, 별폭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 편지의 본론에서는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보이는 子貢의, ‘선생님의 성리와 천도에 관한 말씀은 아무나 얻어 들을 수 없다,[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고 한 말과 관련하여, ‘性道偏全’의 의미와 ‘四七理氣’의 논변은 초학으로서 망령되이 의론할 수 없는 것이지만, 朱子가 林擇之에게 답한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爲己之學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橫渠의 ‘心大無外說’에 대한 변증에 대해서도 그 실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데 주목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中庸』의 ‘戒懼愼獨’에 대해서도 ‘有覩聞無覩聞’의 사이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은 골자를 버리고 외형만 취하는 것이라 비판하며 더구나 아득한 후진으로서 선배들의 의론을 의심하는 것은 뒷걸음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마지막으로 高山書院의 강록은 뜻이 간명하게 나타나 있어 체세를 얻은 것이라 치하하고, 龜村三峴의 기록도 발명한 곳이 많지만, 아직 다 읽을 여가가 없으니 다음 인편에 완성하여 보내겠다고 하였다.
편지의 내용에 ‘師門이 쓸쓸하여 景範이 불행해진 이후로 법어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 말이 보이는데, 사문은 스승인 류장원을 가리키고 경범은 조카인 류낙문을 가리킨다. 스승 류장원1796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기대하였던 조카가 1807년에 세상을 떠난 이후로 법이 될 만한 말을 들을 수가 없다는 말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말로 보인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류장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秉遠(1774~1844)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며 의 아들로,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년(純祖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比安현감을 지냈다.
편지 중에 언급한 수신인의 백씨 존형은 李秉運(1766~1841)을 가리키는데. 자는 際可, 호는 俛齋이다. 순조 때 현감을 역임하여 청백리로 이름이 있었으며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저서는 『俛齋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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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14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蘇湖 經案 執事。
大坪柳弟謝狀。 謹封。
社門塊坐。秋思憭慓。惟欲獲近直諒多聞之側。
而不可幸而得。輒悵然太息而已。忽自隣家轉致兩
度惠牋。兼以別紙三幅及講義一通。乃知高明所以
傾倒於下交者如此。而區區小腹。妄疑有問無報。未敢
續有寒溫之問者。誠淺之爲知也。因竊合幷通看。
有以見詞采富麗。義理贍足。健是合下
門庭中人。雖尋常講辨。有非豹斑蠡酌者所可輕議
也。且其寄意高遠。殆若可以與語夫向上事者然。或恐知
言之猶有所未至。而察人之猶有所未審也。夫專於內修而
不外慕。謹於硏幾而不繳繞。世自有其人。非區區者所敢當也。
用諛辭以悅人。乃世俗輪流常態。赤心相與之地。豈當徇此
謬例耶。別紙末段所規。正中膏肓。方是朋友切磋之
義。誠荷不外。大抵鄙性執滯。鄙質偏駁。鄙學膚淺。全
藉師友之助。庶幾矯揉其萬一。而一自師門寥落。景範
不幸。耳中不復聞法語。安得不鈍滯了人耶。如蒙不
棄。切願隨事提警。使得以少補黥刖。如何如何。伏聞
伯氏尊兄解紱歸閑。
棣萼交輝。承歡盡慶。深庸仰慰。弟。迫此桑楡。衰相
全具。古人所謂不學便老而衰者。良以此也。浩歎奈何。
所喩諸說。大槪無可改評。間亦有不敢苟同者。謹復別幅條
稟。幸勿憚煩瀆。而有以辱敎之也。抑有一說。性與天道。夫子
所罕言。而子貢以下。有不得聞者。性道偏全之旨。四七理氣之辨。已
非初學所敢妄議者。而朱子答林擇之書曰。所喩操存涵養。苦
要分別先後。已是無緊要。而元禮忽然生出一句。心有未嘗放者。遂
就此生出無限枝葉。不知苦苦理會。得此一句。有甚緊要爲己
工夫處也。又嘗於橫渠心大無外之說曰。橫渠此說固好。然
只管如此說。便無規矩無歸着。入於邪遁之說。且如夫子萬世道德之宗
都說得平易。從得夫子之言。便是無外之實。若要說天大無外。則此心便
瞥入虛空裡去了云云。如今所論。多就心有未嘗放及心大無外處。生出
蘇湖 經案 執事。
大坪柳弟謝狀。 謹封。
社門塊坐。秋思憭慓。惟欲獲近直諒多聞之側。
而不可幸而得。輒悵然太息而已。忽自隣家轉致兩
度惠牋。兼以別紙三幅及講義一通。乃知高明所以
傾倒於下交者如此。而區區小腹。妄疑有問無報。未敢
續有寒溫之問者。誠淺之爲知也。因竊合幷通看。
有以見詞采富麗。義理贍足。健是合下
門庭中人。雖尋常講辨。有非豹斑蠡酌者所可輕議
也。且其寄意高遠。殆若可以與語夫向上事者然。或恐知
言之猶有所未至。而察人之猶有所未審也。夫專於內修而
不外慕。謹於硏幾而不繳繞。世自有其人。非區區者所敢當也。
用諛辭以悅人。乃世俗輪流常態。赤心相與之地。豈當徇此
謬例耶。別紙末段所規。正中膏肓。方是朋友切磋之
義。誠荷不外。大抵鄙性執滯。鄙質偏駁。鄙學膚淺。全
藉師友之助。庶幾矯揉其萬一。而一自師門寥落。景範
不幸。耳中不復聞法語。安得不鈍滯了人耶。如蒙不
棄。切願隨事提警。使得以少補黥刖。如何如何。伏聞
伯氏尊兄解紱歸閑。
棣萼交輝。承歡盡慶。深庸仰慰。弟。迫此桑楡。衰相
全具。古人所謂不學便老而衰者。良以此也。浩歎奈何。
所喩諸說。大槪無可改評。間亦有不敢苟同者。謹復別幅條
稟。幸勿憚煩瀆。而有以辱敎之也。抑有一說。性與天道。夫子
所罕言。而子貢以下。有不得聞者。性道偏全之旨。四七理氣之辨。已
非初學所敢妄議者。而朱子答林擇之書曰。所喩操存涵養。苦
要分別先後。已是無緊要。而元禮忽然生出一句。心有未嘗放者。遂
就此生出無限枝葉。不知苦苦理會。得此一句。有甚緊要爲己
工夫處也。又嘗於橫渠心大無外之說曰。橫渠此說固好。然
只管如此說。便無規矩無歸着。入於邪遁之說。且如夫子萬世道德之宗
都說得平易。從得夫子之言。便是無外之實。若要說天大無外。則此心便
瞥入虛空裡去了云云。如今所論。多就心有未嘗放及心大無外處。生出
枝葉。而其於無外之實。則罕有及焉。此尤所當警省處也。且中庸戒
懼愼獨。乃是修德凝道之要。而未嘗着一日之力。徒事競辨於有
覩聞無覩聞之間。連簡累牘而不知止。所謂買櫝而還珠。棄甛桃
而摘醋李者也。雖使說得十分無差。猶未免轉向見聞上去之譏。況以
渺然騃蒙。敢疑先輩大論。妄自穿穴。洗索癬痕。撞着高▣。
便成紛碎。以此從事而望其有進。不幾於却步而求前者乎。然非
高明盛度。亦何以煩溷至此。幸賜諒察。高山盛錄排鋪。謹以旨
義簡明。深爲得體。龜村三峴兩錄。亦多所發明。姑未暇卒業。當俟
後便奉完耳。所謂集抄。冗雜煩複。不成頭緖。幸因謄寫。便
加刊正如何。鄙意本欲合質
疑及考誤釋疑刊補等書。▣
成一書。而書冊不備。未果遂爲。▣(若)
得高眼。辦此一着。淘擇潔
淨。亦足以省得晩暮考閱之勞。
未知如何。但恐抄節編錄。乃朱
退諸先生所深戒。無乃淺見困於
所蔽。謂己當然。而欲他人己從者
耶。旋切悚懼之至。伏惟
兄照。謹拜謝上狀。
甲戌 八月初十日。弟 柳健休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