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3월 9일에, 李秉秀가 사돈인 柳徽文에게 근친 중의 딸을 19일에 데리고 가겠으며 상대의 아들은 자신의 집에서 중뜰[中坪]로 가뵈려 한다고 알리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중뜰은 류휘문의 처가이니 아들에게는 외가이다.
먼저 지난 번 왕림은 지금까지도 감사한데, 자신이 바쁜 일로 곧바로 헤어지게 되었으니 매우 서운하였다 하고, 돌아간 후에 형제분의 생활은 평안한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이 그런대로 지내지만 鼎孫[이름에 ‘鼎’ 자가 들어가는 손자, 곧 류휘문의 손자인 鼎欽]이 며칠 전부터 우연히 병이 들어 하루걸이로 앓은 지가 사흘째인데, 아마도 학질인 듯하다며 안타깝고 불쌍한 심경임을 전하였다. 딸은 헤어질 때에 10일에 보내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며칠 사이 자신이 監河侯1)1) 監河侯 : 監河의 수령으로 곡식을 빌려 주는 사람을 말한다. 장주(莊周)가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는데, 감하후가 "좋소, 나는 머지않아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일 것이니, 그렇게 되면 삼백금(三百金)을 빌려 주겠소." 하였다. 『莊子·外物』여기서는 자신이 몇몇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사정임을 말한 듯하다.
에 지목되어 몇 군데를 긴급히 다녀와야 할 일이 있으므로 형편상 19일에 데리고 가야할 듯하다고 하였다. 또 아드님[자신에게는 사위가 되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중뜰[中坪]을 가 뵈려고 하므로 막기가 어려운데, 타고 갈 말[馬]과 길잡이가 모두 군색하니 고민이라고 하였다.
발신인 李秉秀(1770~1834)는 본관은 固城, 자는 象文, 호는 蠖圃이다. 아버지는 周世로 안동 마뜰[午郊]에 살았다. 딸이 柳致喬에게 시집갔으므로 류휘문과는 사돈 관계가 된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뒷면은 1812년 3월에 柳徽文이 李宇謙에게 아우를 갑자기 잃은 슬픔을 위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갈지 선영 가까이에 장지를 잡을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번 막내 조카와 옛집에서 곡하고 헤어진 뒤로 서풍을 대할 때마다 기가 막혀 오열하며 눈물을 삼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고, 지금 상대가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당한 마당에, 친지 중 그 팔을 베는 아픔과 원통한 심경을 진정으로 알 사람이 자신만한 이가 없을 것인데도, 아득히 먼 곳에서 임종하기 전에 영결하지도 못하고 염습한 후에 한 번 곡하지도 못하니, 세상의 일이 이토록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이어서 봄이 저무는 이때 체력이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으며 모든 가족과 고인의 아들 또한 잘 지탱하고 있는지 물으며 슬프고 잊히지 않는다는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혼미함이 지난번과 같으니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다고 하며 다만 장지를 택하는 데 있어서는 죽은 이의 혼령이야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골육은 고향으로 돌아간 연후에 유명 간에 유감이 없을 것이니, 죽은 이를 위한 계책이나 남은 아들을 위한 계책으로도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였다. 또 상대가 예전에 깊은 산중으로 피해 온 것이 자손을 위한 계책이었고 지금 관구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자손을 위한 계책이어서 그 왕래가 모두 뜻이 있는 일이었는데, 만약 한쪽에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쪽에 골육을 의탁한다면, 전일에 그 곳을 떠났던 뜻이 사라져버릴 것이라 하였다. 더구나 상대도 이미 노쇠해가는 나이에 거듭 슬픔과 여독으로 기운을 소모하였을 것이므로 남겨진 고아를 돌아보아 이처럼 과도한 염려를 하는 것이라 하고, 유택의 길흉이야 운수에 맡겨야겠지만, 길지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하고, 똑같이 길지를 얻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선영으로 돌아가는 것도 또한 하나의 방도일 것이라며 상대의 뜻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수신인 이우겸은 미상이다. 류휘문의 『好古窩文集』에 〈與李益之[宇謙]書〉, 金熙周의 『葛川先生文集』에 輓李益之[宇謙]이 실린 것으로 볼 때 字는 益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