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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12.4717-20180630.01312570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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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건휴,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2
형태사항 크기: 30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2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류건휴(柳健休)이병원(李秉遠)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이 초록(抄錄)한 고산강회의 강록을 보내어 교감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아울러 학문에 더욱 진취하여 가학(家學)을 잇기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12년 2월 그믐에 공복 상중의 柳健休소호리의 이진사에게 자신이 초록한 고산강회의 강록을 보내며 교감해 주기를 청하는 한편 학문에 더욱 진취하여 家學을 잇기를 부탁하는 편지
1812년 2월 그믐에 공복 상중의 柳健休소호리의 이진사에게 자신이 초록한 고산강회의 강록을 보내며 교감해 주기를 청하는 한편 학문에 더욱 진취하여 家學을 잇기를 부탁하는 편지이다. 수신인 이진사는, 발신인인 柳健休가 자신을 服弟로 지칭한 것으로 보아 대산 李象靖의 손자 李秉遠(1774~1844)으로 추정된다. 李秉遠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이다.
먼저 지난 가을 高山書院의 강회에 참석한 것이 십 년의 공부보다 유익하였다는 자신의 소회를 전하고 돌아올 때 노자를 준 데 대해서 감사를 표하였다. 이어 상대방의 모친이 병환 중인 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고 상대 형제와 지명에 ‘咸’ 자가 들어가는 곳의 수령을 지내고 있는 지인의 안부도 궁금하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高山講會 후 講錄은 대략 엮었으나, 자신이 했던 말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여 거의 다 잊어버려 평범한 말로 얼버무렸으며, 상대방의 깊은 학문적 경지에 대해서는 더욱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였다 하며, 간혹 현재의 소견으로 부연 설명하였으니 결국은 기록의 체세를 그르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록을 ‘澗亭’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더니 한 달 만에 돌아온 데다 어수한 일에 골몰하느라 곧바로 보내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보내니 자세히 살펴본 후 거친 대목을 제거하고 바로잡아서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근래에는 이런 會講이 끊어지고 독실한 선비조차 공부를 사유화하여 남에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하며 옛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안타까워하고, 상대를 향하여서는 더욱 정진하여 가학을 이음으로써 자신에게도 공부의 영향을 끼쳐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말미에 時事와 관련하여 關西 사람들이 일으킨 소요가 소탕되지 않아 아직도 소용없는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는 1811년에 서북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야기된 홍경래의 난에 대한 언급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龜湖 어른과 忠立의 안부를 묻고 편지를 맺었다. 충립은 信庵 李秉夏(1780~1852)의 字이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2년 류건휴(柳健休) 서간(書簡)

蘇湖 李進士 經案 執事。
閒坪 柳弟候狀。 生式謹封。
省式。前秋高山之會。叨陪僉長老。周旋於
禮法之場。況溪聲岳色。猶帶
先生杖屨餘香。令人感發。奚啻讀十年書
也。且於其還。至蒙代步資贐之惠。歸來
感戢。益仰君子容衆之盛度也。卽欲修
書布謝。而喪威憂患。一味滾汨。迄未果遂。殊
愧不敏。近因誠伯。獲聞
太碩人鼎席。連欠和節。區區貢慮。春氣漸
和。計已收翔櫛之慶。而
聯床起居。進學有相
咸衙問安。亦以時收聞否。服弟。臈末遭尙右之
慽。又家內谻憂。經歲未痊。痛楚愁悶。無足
仰喩。講錄妄拙草搆。而苦無記性。自家說話。
亦遺失殆盡。況於其他乎。至或換易張三李四。
況其所說精奧之旨乎。其間往往據今所見。敷演
爲說。殊失記錄之體。然此特出於以爲求敎
之地。非敢欲以備賢者之採擇也。卽宜持納而求訂於
澗亭。月餘方還。因復憂撓。不卽脫藁。今始因便
拜呈。幸須細加勘照。芟正紕繆。却以投還。幷
惠駁示。如何。諸賢所錄。或已入手否。切望俱
收參校。裁其取舍。而惟務簡要
以備齋中故事。寄眎副本。
而祛蒙蔀。又如何。年來此學絶
講。間有篤志之士。各私其有。不肯向
人說道。坐成孤陋。古人爲
學。殆不如是也。伏願益加
竿進。以紹家學。使懶
廢如健休者。亦與被其
餘潤。則其何感幸如之。
西警尙今未臻蕩掃。
漆室之憂。猶未已也。龜
湖丈席平安否。忠立
老兄安否亦何如。幷
切溯仰。餘。撓甚不宣。
伏惟
尊照。
壬申 二月 晦日。弟功服人 柳健休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