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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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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태순
작성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24.1 X 36.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온혜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1811년 8월 7일에 이태순양산의 재정이 어려워 부탁받은 종이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천 리 떨어진 곳에서 상대방 아들이 전해준 편지를 통해 강녕함을 알게 된 일에 하례하고, 자신은 궁핍한 고을을 다스리며 고민스럽게 지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통도사는 자신의 고을 안에 있어도 본래 종이 한 묶음도 들이지 못하여 사서 쓰는 것도 매번 부족할까 걱정스러울 정도이니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1년 8월 7일, 李泰淳이 부탁받은 종이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11년 8월 7일, 李泰淳이 某人에게 자신의 임지인 梁山의 재정이 부족한 상황을 말하고 상대가 부탁한 종이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할 사정임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천 리나 떨어져 있어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뜻밖에 상대의 아들이 편지를 가지고 도착하여 놀랍고 반가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고, 더구나 편지를 통하여 정양 중의 기운이 강녕함을 알았으니 더욱 하례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궁핍한 고을에서 얼굴 펼 날 없이 지내니 이미 몹시 고민스러운 일인데, 통신사를 지내자마자 千◘를 등지고 앉았다 하고, 아드님이 찾아온 것은 과연 이런 줄 몰라서였던가 묻고, 또 집안 종제인 夢叟도 도착하였으나 노자조차 주어 보내지 못하였으니 그 사이의 어려운 사정을 이것으로 알 것이라 하였다.
通度寺는 자신의 고을 안에 있어도 본래 종이 1속도 와서 들이지 못하므로 때맞춰 사서 쓰는 것도 매번 부족할까 걱정스러울 정도라 하며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태순1810년 12월의 도정에서 양산 군수에 제수되어 재임하고 있었다.
발신인 李泰淳(1759~1840)은 본관은 眞城, 자는 來卿 또는 聖以, 호는 草草庵이다. 아버지는 龜元이다. 1783년 식년시 생원에 입격하고 1801년 문과에 급제하여 成均典籍, 사간원 正言, 楚山 府使 등의 내외직을 거쳤다. 이후 대사간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동부승지,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일체 사양하고 낙향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千里遠阻。一拜未易。謂外
胤從。奉書而至。驚喜不
可盡喩。矧審
靜養動止候康坦。尤
用仰賀。族弟。來坐窮鄕。
無展眉時日。已極可悶者。
而纔經信使。負坐千
◘。胤從之際玆來訪。
果是不審之致耶。家
從弟夢叟亦到。而不能備
資斧而送。其間艱辛。
從而知之矣。至於通度
寺。則雖在圖地。而本無一
束紙
來納者。
而隨時
貿用。每
患不足。何
暇優數
耶。伏悶
伏歎。餘。
吟病不
備式禮。
辛未 八月 初七日。族弟 泰淳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