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8월 7일, 李泰淳이 부탁받은 종이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11년 8월 7일, 李泰淳이 某人에게 자신의 임지인 梁山의 재정이 부족한 상황을 말하고 상대가 부탁한 종이를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할 사정임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천 리나 떨어져 있어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뜻밖에 상대의 아들이 편지를 가지고 도착하여 놀랍고 반가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고, 더구나 편지를 통하여 정양 중의 기운이 강녕함을 알았으니 더욱 하례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궁핍한 고을에서 얼굴 펼 날 없이 지내니 이미 몹시 고민스러운 일인데, 통신사를 지내자마자 千◘를 등지고 앉았다 하고, 아드님이 찾아온 것은 과연 이런 줄 몰라서였던가 묻고, 또 집안 종제인 夢叟도 도착하였으나 노자조차 주어 보내지 못하였으니 그 사이의 어려운 사정을 이것으로 알 것이라 하였다.
通度寺는 자신의 고을 안에 있어도 본래 종이 1속도 와서 들이지 못하므로 때맞춰 사서 쓰는 것도 매번 부족할까 걱정스러울 정도라 하며 넉넉하게 보내주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태순은 1810년 12월의 도정에서 양산 군수에 제수되어 재임하고 있었다.
발신인 李泰淳(1759~1840)은 본관은 眞城, 자는 來卿 또는 聖以, 호는 草草庵이다. 아버지는 龜元이다. 1783년 식년시 생원에 입격하고 1801년 문과에 급제하여 成均典籍, 사간원 正言, 楚山 府使 등의 내외직을 거쳤다. 이후 대사간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동부승지,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일체 사양하고 낙향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