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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류식(柳栻)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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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식, 류휘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6.8 X 3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류식(柳栻) 서간(書簡)
류식(柳栻)류휘문(柳徽文)에게 보낸 편지로 일상의 안부를 묻고 『태극도』(『太極圖』)에 관한 상대방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아울러 남한호(南漢皓)에게 보낸 『대학』(『大學』)에서 평론이 빠진 부분을 상대방의 생각을 물었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11년 11월 24일 柳栻柳徽文에게 『太極圖』의 해석에 대한 상대의 의론에 이견을 제기하고 아울러 子皓에게 보낸 『大學』에 관한 여러 說에서 누락된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1년 11월 24일 柳栻柳徽文에게 『太極圖』의 해석에 대한 상대의 의론에 이견을 제기하고 아울러 子皓에게 보낸 『大學』에 관한 여러 說에서 누락된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초가을에 백씨 존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내용이 안부 인사뿐만이 아니어서 고맙고 부끄러웠다 하고, 그 사이 한두 군데 반복하여 생각한 곳이 있었으면서도 인편이 없어 전하지 못하였는데 앞으로 소식이 매우 잦을 것이니 이때까지의 논의를 합병하여 생각함으로써 논의가 귀일되기를 바란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이 섣달의 추위에 정양하는 형제분의 건강과 생활이 평안하며 독서에 새 재미가 있는지 묻고 자신은 병으로 칩거하는 중에 노둔한 아이들 두어 명과 글을 읽고 있을 뿐 달리 전할 말이 없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心性과 理氣의 설에 대해서는 이곳 붕우도 이견이 없지 않으므로 자신의 의론이 틀렸음을 알았다 하고, 그러나 『태극도』의 上圈을 순수한 ‘理’라 하고 제2도를 ‘理氣를 겸한 것’이라 한 상대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자신의 견해로는 상권은 朱子가 陰陽圈에서 위로 도출하여 ‘섞이지 않는다.[不雜]’는 뜻을 보인 것이니, 실상 음양권 속의 태극이지 兩儀를 가진 태극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 「則圖畫卦說[河圖」를 본 떠 괘를 그은 것에 대한 설은 뜻이 미세하고 위치가 정당하니, 진실로 전시대 학자들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라 하였다. 그 가운데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견해가 미치지 못하여 그런 것이라 하고, 훗날 대면하여 의견을 다 제시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 하였다. 또 子皓에게 보낸 편지 중의 대학제설은 자신도 평소에 의문을 가진 곳이었다 하고, 지금 보니 근거를 넓게 제시하고 정밀하게 변론하였으나, 枕澗亭 答書에 대해서는 고쳐 평론한 곳이 없었다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점점 쇠약해져 가니 붕우와 의론을 나눌 수가 없게 되었다 하고, 이 몇 가지 조항은 사실 자신에게서 발단된 문제이므로 다시 자세하게 말하였는데, 아마도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니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용에서 대학제설과 관련하여 언급한 子皓는 南漢皓(1760~1821)의 자이다. 본관은 宜寧, 호는 誠齋로 상주 杜陵에 살았다. 李象靖鄭宗魯의 문인이다.
발신인 柳栻(1755~1822)은 본관은 진주, 자는 敬甫, 호는 近窩이다. 아버지는 承源이다. 상주에 살았다. 정종로를 사사하였고, 1790년 증광시 진사에 입격하였다. 문집 『近窩集』이 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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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11년 류식(柳栻) 서간(書簡)

三山 經案 拜呈。
杜陵柳弟候狀。 謹封。
秋初
尊伯氏丈袖傳惠覆。兼以別紙一幅。再三披玩。非
但寒溫問也。感愧交幷。其間有一二覆繹處。而便沒
未果。向後信息甚大。庶幾合幷商量。以期爛熳之歸矣。
卽奉令咸氏。詢知冬內。竟不成行。信乎缺界事。未
易圓。悵歎何極。惟是窮冱。
靜中棣履起居。對時晏重。溫理舊業。日有新味。仰
慰區區之至。弟。畏寒蟄伏。與病爲隣。日與鈍根小子三
數人。商量句讀。所業只此耳。無足奉聞者。心性理氣之說。
此處朋友。亦不無異同之見。故擧似吾兄矣。兄旣不以爲
然。乃知鄙說必誤矣。然高明以太極圖上圈爲純理。第二
圈爲兼理氣。此則弟亦聽瑩。夫上圈。卽朱子就陰陽圈中
挑出在上。而以示不雜之意者也。其實上圈。卽陰陽圈中太
極。而非有兩樣太極也。今來諭如是云云。則
似未免於上下圈分二之嫌。而恐與朱子之意
不類矣。若於此處。詳細分開。則心性之卞。
亦不外是矣。幸更加商量如何。則圖畫卦。
前此每草草看過。而未能深思。今見來圖。
用意微密。位置精當。信是發前人之
所未發也。如我者何敢容
易開喙。而其中略有信
未及處。此則愚見之未逮
者。然若非相對面商。則未易
究竟也。且病思荒蕪。
不得悉布。容俟後日未
晩耶。抵子皓書中大學
諸說。弟亦平日之所蓄疑
者。而今乃攷據廣博。辨
論精密。當以來諭爲正。
猶頗放失一段。兄說
極有意趣。而枕澗亭
答書。似無改評。未知意下
如何。自顧衰相漸迫。不及
日負。何足與賢朋友上
下其論。而但此數條。實
自我開端。故今復靦縷。
所言必不中理。更賜斤正
是望耳。餘。伏枕呼倩。不
盡所懷。
崇照。謹候上狀。
辛未 至月 念四日。弟 柳栻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