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3월 3일, 柳栻이 柳徽文에게 心性說과 관련한 이견을 다시 개진하며 『論語』와 『舜典』, 「敬簡堂記」에서 석연하지 못한 곳에 대하여 질문하고, 「則圖畵卦說」을 등사해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0년 3월 3일, 柳栻이 柳徽文에게 心性說과 관련한 이견을 다시 개진하며 『論語』와 『舜典』, 「敬簡堂記」에서 석연하지 못한 곳에 대하여 질문하고, 「則圖畵卦說」을 등사해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겨울 만남은 자신이 병들고 상대는 바쁜 바람에 미진한 채로 헤어져 아직까지 그리운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며 해가 바뀌고 봄이 저무는 이때에 상대의 독서하는 생활에는 깊은 깨달음이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새해의 소득이라고는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뿐이요, 노쇠와 병으로 게으름이 점점 심해져 공부는 하다말다를 반복하니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겸사하였다.
心性說에 대해서는 지난번 만났을 때 자신의 의견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이 문제는 워낙 근원이 되는 곳이므로 상세히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다음, ‘心’이 ‘理’와 ‘氣’를 겸하는 까닭은 그것이 ‘性’을 통합하기 때문인데, 만약 그 가운데서 나누어 말하면 ‘性’이 곧 이라고 하고, 이를 ‘性’과 떼어놓으면 ‘心’이 ‘氣’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心’이 ‘氣’를 주장한다고 하면 또한 ‘理’와 ‘氣’를 나누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다만 ‘理’와 ‘氣’ 사이에서 주장하는 바는 ‘氣’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또 『論語』의 ‘廬井有伍’라고 한 대목의 주에 ‘다섯 집을 묶어서 서로 지켜주게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周禮』나 『孟子』의 小註와 모두 합치하지 않으니, 정전제에서 여덟 집이 정전을 함께 경작한다는 뜻과 다섯 집을 묶어 지키기 한다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상고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또한 張南軒의 「敬簡堂記」에 보이는 ‘古之先’의 의미와 『舜典』 ‘陟方乃死’의 주에서 ‘雲徂于方’이라 한 말의 出處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則圖畵卦說」은 지난번에 보여준 적이 있었으나 자신이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지금은 모두 잊어버렸다 하고, 한 部를 등사하여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발신인 柳栻(1755~1822)은 본관은 晉州, 자는 敬甫, 호는 近窩이다. 아버지는 承源이다. 상주에 살았다. 정종로를 사사하였고, 1790년 증광시 진사에 입격하였다. 문집 『近窩集』이 있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