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11월 그믐날, 柳健休가 某人에게 헤어진 후의 안부를 묻고 『心經集抄』의 등사가 끝났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 원고를 이번 인편에 돌려보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10년 11월 그믐날, 柳健休가 某人에게 헤어진 후의 안부를 묻고 『心經集抄』의 등사가 끝났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 원고를 이번 인편에 돌려보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취성에서 함께 돌아올 때는 각자 바쁜 일 때문에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하여 아직도 서운하다 하고 상대 어머님의 침식 절도와 상대의 공부하는 재미는 어떤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서 자신의 안부와 관련하여서는 친척 지정 간의 초상이 이어져 슬픈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중에 家廟를 보수하느라 골몰하여 말할 만한 정황이 없다 하였다.
본론으로 『心經集抄』는 이미 다 베꼈을 것인데 자세히 살펴 가감해주기를 바란다고 하며, 마침 긴급히 상고할 점이 있으니, 원고를 이번 인편에 돌려주기를 원하였다. 덧붙여 지난번 겨울에 보내준 시편에는 곧바로 화운해서 보내드려야 했는데도 상대방의 絶句에 强韻이 있어 입도 열어보지 못하여 지금까지 늦어졌다 하고, 이제 겨우 화답시를 엮어서 별지에 써 보내니 서로 주고받는 데 의미를 두되 시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웃지는 말라고 겸사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즘 공부에서 새로 터득한 것이 있으면 은밀히 알려 달라고 하며 사연을 맺었다.
『心經集抄』는 柳健休가 이 때 초고를 엮은 뒤 사우들과 더불어 교감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所庵 李秉遠의 편지에, "『心經集抄』를 한 차례 정돈하였다면 진실로 학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지만 스스로는 안목이 없어 감히 형을 위하여 도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중히 요청하시는 말씀이 있으니, 다시 숙독한 후에 계속하여 제 의견을 갖추어 여쭈겠습니다."라 한 말이 보인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