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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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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한조, 류건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문경시
작성시기 1808
형태사항 크기: 30 X 33.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8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남한조(南漢朝)류건휴(柳健休)에게 보낸 편지로 성(性)과 도(道), 리(理)와 형기(形氣)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앞서 보낸 두 번의 편지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08년 12월 19일에 南漢朝柳健休에게 ‘性’과 ‘道’, ‘理’와 ‘形氣’의 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한 앞뒤 두 번의 편지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08년 12월 19일, 南漢朝柳健休에게 ‘性’과 ‘道’, ‘理’와 ‘形氣’의 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한 앞뒤 두 번의 편지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피봉에 子强 형에게 올린다 하였는데 자강은 柳健休의 자이다.
서두에서 지난번 편지에서 말한 것은 핵심을 짚은 정밀한 내용으로 자신의 늙은 정력으로 쉽게 엿볼 수 없는 것이어서 마음으로 생각할 뿐 답장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 사이에 또 편지를 보내어 성의를 표한 것이 더욱 간절하니 읽고서 더욱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섣달의 추위에 독서하는 근황은 평안한지를 묻고 자신에 대해서는 추위를 맞아 병이 더욱 고통스러워 근래에는 침과 약을 쓰는 데 심력을 허비하고 있다며 가소롭고 한탄스럽게 여기는 심경을 전하였다.
본론으로 앞뒤 두 편지에서 말한 ‘性’과 ‘道’에 관한 설명을 통합해서 보니, 앞 편지에서는 성이나 도를 理로써 말하여, 大意에서 옳은 것이었으나, 나중 편지에서는 성이 도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다고 의심한 부분과 처음 태어날 때 품부되기도 하고 태어난 후에 부여되기도 한다고 한 말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성과 도가 ‘形氣’를 범하지 않는다는 본래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반문하며 부정하는 의견을 보였다. 그 근거로 朱子의 "理로써 말하면 온전하지 않음이 없으며, 氣로써 말하면 편벽되기도 하고 온전하기도 하다."고 한 말을 들고, 이것이 과연 처음 태어날 때 품부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는가 하며, 그것이 아니라 형기 위에서 떨어지고 합한다는 데 나아가 말하였으므로 온전하기도 하고 온전하지 않기도 한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中庸』에서 논한 性과 道는 위로 天命에서부터 아래로 일용사물에 이르기까지, 근본에서 주간에 이르기까지, 주간에서 지엽에 이르기까지 오직 理로만 말한 것이니 곧 이른바 ‘形氣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은 까닭’이라 하였다. 상대의 나중 편지에서 말한 바에는 혹 출입이 있어 스스로 모순이 된다 하고, 잘못된 견해로 굽은 것을 펴려다가 반대쪽으로 굽히는 것일 수 있으니, 다시 반성하여 온당함을 구하기를 천만 바란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이 지나친 것 같으나, 이것은 儒家 本原의 宗旨로서 털끝만치라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니 허물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 南漢朝(1744∼1809)는 본관은 宜寧이며 아버지는 必容이다. 자는 宗伯, 호는 損齋이다.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9세에 고아가 되어 외숙인 金鎭東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나중에 李象靖을 사사하여 경사자집을 읽고 居敬窮理의 학문에 힘썼다. 여러 번 道伯암행어사의 천거를 받았지만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저서로 『손재문집』 15권이 있다.
수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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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08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子强兄 謹謝狀上。
柳生員 執事。 謹封。
前書誨諭。精微肯綮。有非老昏精力容易窺覷。是以或遇
遞便。輒復闕然。而徒往來於心。便中又拜寵翰。所以致意
者。愈往愈摯。披讀數三。冞增縮踖。就審窮寒。
經履履玆神護。所以慰遠懷者。非尋常比也。漢朝所苦。當
寒倍苦。近試刀圭。而先自勞費心力。一笑一歎。性道說。前後兩
紙。合竝通看。有以仰窺高明不吝捨舊之盛意。然前
書曰。性從天命上說下來。而道是循性之謂。則乃不犯形氣。而專
以理言者。大意已是。而今書。乃有性同道不同之疑。而有稟
生初稟生後之言。則依舊是兼氣說。烏在其不犯形氣
哉。若曰稟生後說性不去。則昔賢何以有剔撥專言之訓
也。朱子曰。以理言。則無不全。以氣言。則有偏有全。此果以
稟生之初。言之乎。惟就形氣上離合說。故有全不全之
理〖異〗耳。中庸所論性與道。上自天命。下至日用事物。而自
本而幹。自幹而枝。專以理言。則乃所謂剔撥形氣者也。
高明後說。或出或入。自相矛盾。不知謬
見。矯枉過直。不免於亦枉耶。不然。
高明於先瘳後病之說。更加反省。以究
極當。千萬拱俟。語頗傷直。然此是儒
家本原宗旨。不
容一毫有差。想
不以爲罪也。精神
耗悴。略略貢臆。
惟希諒察。
不備謝儀。
戊辰 臈月 十九日。病弟 南漢朝 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