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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이노영(李魯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08.0000-20180630.0165257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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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노영, 류휘문, 류병문
작성시기 1808
형태사항 크기: 29.5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8년 이노영(李魯永) 서간(書簡)
이노영(李魯永)류병문(柳炳文)류휘문(柳徽文)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 추위에 형제의 근황을 묻고 게으른 자신을 이끌어 근심을 면하게 해 달라는 청을 하였다. 아울러 형제가 더욱 노력하여 기대에 부응하기를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08년 11월 24일, 李魯永柳徽文 형제에게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게으름을 일깨워 자포자기하는 부류가 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더욱 면려하여 성취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08년 11월 24일, 李魯永柳徽文 형제에게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게으름을 일깨워 자포자기하는 부류가 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더욱 면려하여 성취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산 위의 달이 창에 비치니 매양 "댓잎이 밝은 창에 어리니 살아있는 그림과 같네.[竹入明窓如活畫]"라고 한 시구를 외며 상대를 그리워한다 하고, 뜻밖에 받은 편지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는 정성스러운 뜻을 전해 준 데 대하여 감사하고, 동짓달의 추위에 형제분의 근황을 물었다. 자신은 게으름이 고질이 되어있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스스로를 새롭게 할 가망이 없다고 겸사하고, 때때로 이끌고 깨우쳐 이러한 근심을 면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승의 근황은 별 우환이 없어 다행이지만 부인께서 열흘이 지나도록 편찮으시니 걱정이라는 말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近思錄』 공부는 마쳤는지를 묻고 부디 더욱 면려하여 멀리서 기대하는 자신의 정성에 부응하기를 부탁하였다.
발신인 李魯永은 생몰이나 활동 사항 등이 미상이다. 다만, 류휘문의 杜陵日記의 1808년 10월 6일 조에 "洪景河·李魯永 등과 함께 東臺에 나가 『중용』의 ‘毛猶有倫’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 말이 있고, 이 서간에서 함장의 근황을 전한 것에 비추어 볼 때,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함께 배운 동문 학자로서 이때까지 스승을 모시고 수학 중이었던 듯하다.
수신인 형제는 柳炳文(1776~1826)과 류휘문이다. 류병문은 본관은 全州, 자는 仲虎, 호는 素隱이다. 아버지는 萬休이다. 柳長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문집 『素隱集』과 『完山世牒』이 전한다.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8년 이노영(李魯永) 서간(書簡)

三峴 棣案 執事。
李生客中上謝狀。 謹封。
有時山月入窓。每誦竹入明窓如活畫
之句。只自慕德而起懷也。料外
惠札落自無何。辭意繾綣。出於相愛。
奉玩之餘。益感君子之不我棄也。謹
伏審窮冱。
棣床起居加衛。渾節均吉。何等仰慰。
記下。頹懶成痼。雖親炙於函丈之筵。而小
無遷改自新之望。是知終歸於暴棄之
類。幸時賜提醒。俾免此患。如何。丈
席患候更無添節。是幸。第其閤憂閱
旬彌留。向歇未易。㦖㦖何達。近思錄。其
間能下工否。明晝棐几。所得必日富矣。益
加勉勵。以副下悰如何。餘。便忙。暫此替
伸。不備。伏惟
照亮。謹謝上狀。
戊辰 至月 二十四日。記下 李魯永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