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07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07.4728-20180630.013125700049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한조, 류건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문경시
작성시기 1807
형태사항 크기: 27 X 4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7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남한조(南漢朝)류건휴(柳健休)에게 보낸 편지로 먼저 보내준 편지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아울러 학문에 치력하여 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807년 11월 2일에 南漢朝柳健休에게 보내준 편지에 감사하며 안부를 묻고 학문에 치력하여 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당부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07년 11월 2일에 南漢朝柳健休에게 보내준 편지에 감사하며 안부를 묻고 학문에 치력하여 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당부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자신에게 왕래하는 華宗[이름이나 자에 ‘華’자가 들어가는 자신의 宗人에 대한 지칭] 인편으로 상대의 공부하는 근황에 대하여 전해 듣고 흠모하면서도 한 번도 편지를 보내지 못하여 자신의 不敏에 대하여 탄식하던 중이라 하였다. 또 의외의 편지를 받으니 기억해 주시는 후의에 감사하다고 하며 다만 상대가 자신에게 지나친 공손을 표하여 마치 후배처럼 처신한 데 대하여 부끄럽고 두려워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겨울 추위가 이미 매워진 때에 상대방의 건강은 어떠한지 안부를 물은 다음 독서에 성취가 있을 터인데 자신이 직접 만나서 그 영향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자신은 날로 노쇠가 심해져 출입을 끊고 조섭하는 중이지만 점점 게을러지는 바람에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 터인데 상대가 과도히 추중을 아끼지 않으니 당대 군자들에게 비웃음을 살 뿐 아니라 상대의 실상에 힘쓰는 공부에도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후로는 이러한 허례를 낭비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景范의 죽음은 학자들이 모두 애통하게 여기는 일이라 하고 상대가 쓴 그의 유사를 보니 그 독실한 위기의 공부가 세속의 학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라 하고 사는 곳이 멀어서 미처 알고 지내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미 그와 학문상의 교류를 통하여 깊이 도움을 받았을 것이니 더욱 절차탁마하여 평소에 서로 면려하던 뜻에 부응하는 것이 切偲의 의리일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보내준 問目은 독서와 사색을 거친 뒤에 나온 질문이라는 것을 알 만하니 경탄을 그치지 못하겠다 하고, 용무에 시달리느라 간략하게 대답하니 이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시 알려달라고 하며 편지를 맺었다.
발신인 南漢朝(1744∼1809)는 본관은 宜寧이며 아버지는 必容이다. 자는 宗伯, 호는 損齋이다.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9세에 고아가 되어 외숙인 金鎭東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나중에 李象靖을 사사하여 경사자집을 읽고 居敬窮理의 학문에 힘썼다. 여러 번 道伯암행어사의 천거를 받았지만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저서로 『손재문집』 15권이 있다.
수신인 柳健休(1768∼183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柳長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7년 남한조(南漢朝) 서간(書簡)

每因華宗往來人。輒問
尊候動止工夫節度。以慰嚮慕。而未有一書。
以致區區之意。恒切衰嫩不敏之歎。忽於便中。
承拜
手書遠存。仰認不遺之厚意。感荷良深。而
但執禮過恭。若後進之於先輩。令人愧懼。不
敢當耳。冬寒已栗。
體中節宣。一向康謐否。觀玩之工。想益精深。恨
無由致身座側。獲霑其餘潤也。漢朝。衰悴
日甚。社門調養。益長其頹惰。日究乎汗下。不足
比數於人。而高明乃推借過隆。稱謂不恡。不惟
朝見譏於君子。其於高明務實之學何如也。今
後掃去此等虛文。惟從事於切磨講辨之實。
區區之望也。景范[範]之亡。吾黨普切痛惜。得見遺事
數條。其篤實爲已之心。絶異俗學。尤切地遠未
及從遊之恨耳。高明旣深與之資益。在今惟
益加刮{磨+刂}。持守之力。使其平昔相勉之志。不墜於地。
尤是不忘切偲之義也。來目悉出於積累玩索
之餘。欽歎無已。欲俟從容供答。而冗墝無暇。不免
倉卒草略。紕繆處一一回敎。千萬切望耳。餘。不
備狀禮
丁卯 十一月 初二日。弟 南漢朝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