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4월 18일 柳徽文이 이생원에게 아내를 잃은 후의 근황을 전하고 어버이의 쇠약해지는 건강과 조카의 병을 근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799년 4월 18일 柳徽文이 이생원에게 아내를 잃은 후의 근황을 전하고 어버이의 쇠약해지는 건강과 조카의 병을 근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자신이 아내를 잃었다 하여 보내준 위로편지에서 평소에 버리지 않는 뜻을 알 수 있어 매우 감사하였다 하고, 다만 장사 절차에 골몰하느라 지금까지 답장을 하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초여름의 절기에 두 분 안어른의 체력은 건강하시고 어른 모시는 상대의 공부하는 근황도 평안하며 從嫂씨 또한 어린 아이 데리고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죽은 이를 슬퍼하고 산 사람을 위로하느라 시름을 풀 수 없으며, 어버이의 건강도 쇠약해지시니 애타는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基姪(이름에 ‘基’ 자가 들어가는 조카)은 이제야 급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병이 너무 심하니 사람들 보기에 의아할 듯하다고 하였다.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恭惟吾南舊閥。曰翼成黃。世襲遺訓。壼彛是將。
允矣孺人。歸于令族。女士攸宜。家姻是則。
肆惟胤公。循蹈義方。曁我祖妣。閨訓式承。
靑年懿烈。小子忍說。嗚乎先考。幼歲單孑。
孺人是矜。食息奚忘。小子不天。遽遭閔凶。
瞻望渭陽。有漏霑衣。庶幾源源。勿替攸依。
天不悔禍。奄至斯境。舊感私痛。次第交迸。
几幃將撤。祗拜以辭。一觴一炷。鑒此哀私。
尙饗。
위의 글은 류휘문 서간의 공란에 쓴 제문으로 서간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제문을 쓴 사람의 할머니 孺人黃氏는 翼成公 黃喜 정승의 후예로 자신의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는데, 일찍 남편을 여의고 어린 고아를 잘 길렀었다 하고, 자신이 복이 없어 할머니를 여읜 후에 지금 상기가 끝나 빈소를 거두려 하면서 제사를 올린다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