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7월 28일에 류건휴가 문중의 어떤 인사에게 동암 류장원의 유사 초고가 완성되었다는 소식과 자신이 발췌 저술하고 있는 『東儒四書解集評』의 진행상황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798년 7월 28일에 류건휴가 문중의 어떤 인사에게 동암 류장원의 유사 초고가 완성되었다는 소식과 자신이 발췌 저술하고 있는 『東儒四書解集評』의 진행상황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섣달의 편지에 답장도 못하였는데 다시 긴 편지로 위로와 면려를 보내주니 감사하다고 서두를 연 다음, 상대 쪽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 이사하느라 고생하였을 것이나, 그 이후 공부에 새로 얻은 소득이 있을 터인데 그 서론을 얻어 듣지 못하니 한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그 사이에 복제를 마쳤으나 거듭 지독한 상척을 겪는 바람에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어 남았던 본성마저 모두 잃고 빈껍데기만 남은 꼴이었는데 지금 편지로 권면해주시니 부끄러운 한편 돌아가신 스승의 가르침 아래서 지도를 받는 듯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돌아가신 선생의 遺事는 燁如와 孟博이 초고를 완성하였는데 그 내용이 온전하고 좋은 듯하다고 하며 겨울 쯤 隱嶺의 南丈을 찾아뵐까 한다고 하였다. 또 『聖學正路』를 읽은 감상을 전하였는데 한 마디 한 구절이 모두 균형 있고 친절하여 규모의 엄정함과 공부의 세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자신의『東儒四書解集評』은 손 가는대로 발췌하였는데 차례가 없어 다시 정밀하게 요약하려 하였으나 선생의 경계하는 말씀을 듣고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목을 갖춘 자가 있어 알맞게 요약한다면 궁벽한 시골의 늦둥이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며 넌지시 도움을 요청하였다.
추신으로 한 번 모이자 한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니 만남에도 운수가 있어서 그런가 묻고 사실은 성의가 부족해서라며 옛사람이 책상자를 지고 먼 길을 찾아 갔었던 것을 생각하면 땀이 발끝까지 적실만큼 부끄럽다고 하였다.
편지 내용에서 말한, 돌아가신 선생은 東巖 柳長源을 이르고, 燁如와 孟博은 柳晦文(1758~1818)과 柳約文(I745~1819)의 자이다. 또 隱嶺의 南丈은 損齋 南漢朝를 가리키는 말이며,『聖學正路』는 川沙 金宗德의 저작이다.
발신인 柳健休(1768∼1834)는 본관은 全州, 자는 子强, 호는 大埜이다. 경상북도 安東에 살았다. 초년에 柳長源에게 배우고, 류장원 사후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관련 저서를 남겼는데,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등 선현의 문집 63종을 참조하여 『東儒四書解集評』을 쓰고, 또 퇴계와 대산의 성리학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近思錄』의 체제를 따라 『溪湖學的』을 썼다. 문집으로 『大埜集』 10권 5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