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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798.4717-20180630.01312570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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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범휴, 류충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98
형태사항 크기: 30 X 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수곡파 대야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8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류범휴(柳範休)류충원(柳忠源)에게 보낸 편지로 새해 안부를 전하고 생활이 어려운 고향집에 6, 7섬의 미곡을 내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대소가를 구휼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상년

상세정보

1798년에 柳範休안변부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한들[大坪]의 족숙 柳忠源에게 6, 7섬의 미곡을 내어 기아에 시달리는 대소가를 구휼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798년에 柳範休안변부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한들[大坪]의 족숙 柳忠源에게 6, 7섬의 미곡을 내어 기아에 시달리는 대소가를 구휼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간찰이다.
먼저 떠나올 때는 바쁜 일로 편안히 이야기하며 작별하지 못하여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며 아쉬웠던 마음을 쓴 다음, 신년이 된 지금 정양 중의 생활이 만복하며 아들들은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은 눈길을 헤치고 고생 끝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눈병으로 어지러운 중이라 하고, 막 병든 몸을 일으켜 북쪽 안변을 향하여 출발하였으나 기력으로 볼 때 무사히 도착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안변이 큰 고을이라고 하나 支供이 빈 자루나 마찬가지여서 고향의 집을 생각하면 부황 든 가족들의 모습을 살리기 어려울 듯하다 하고, 그 사이 생활할 방도가 다른 데서 나올 수 없으니, 곡가를 알아본 후 6, 7섬의 미곡을 내어서 굶어 구렁에 뒹굴 처지에 있는 한들의 대소가 사람들을 구휼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아우인 疇休가 2월 20일 경에 돌아가게 될 터인데 곡가는 그 때에 갚아 줄 것이니, 오로지 상대만 믿는다는 간절한 심경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임 전의 부질없는 편지가 괜한 변고를 일으킨다는 꾸짖음을 면하겠는가 하고, 막 말[馬]을 대기시킨 채 간략하게 쓰느라 예를 갖추지 못한다고 하였다.
발신자 柳範休(1744∼1823)는 본관은 全州, 자는 天瑞, 호는 壺谷이다. 공조참의 慵窩 柳升鉉의 손자이자 참봉 道源의 아들이다. 蘭谷 金江漢의 사위가 되어 학문적인 감화를 입었으며, 이후 大山 李象靖의 문하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 1785년 천거로 泰陵慘奉에 나아가 사옹원봉사, 약방제조를 거쳐 의금부도사, 송화현감, 장악원주부, 사도시첨정을 지내고, 1795년에는 高城郡守로 부임해 군정을 바로잡고 선정을 베풀었다. 1797安邊府使로 부임했다가 2년 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주력하였다. 문집은 ≪壺谷集≫이 있다.
수신자 柳忠源(1742~1798)은 字가 公直으로, 松陰 柳和鉉의 아들이며 류건휴의 부친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8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千里遠別。緣被忙撓。未得
穩討。而上馬西向。不覺十步
而九回首也。伏惟新年。
靜裡起居益福。胤從輩
亦皆支持否。族姪。衝泥穿雪。
十顚九仆。離發十日。僅僅入
洛。而眼眚頭眩。殆成尸走。今
日雖强疾向北。自家氣力。
似難無事得抵。且䧺府支待。
便同空槖。念及家鄕。百口
頷顑之狀。深恐涸轍之鱗。難
乎待西江之注。其間濟接之責。
不在於他。幸望折價出六七石谷。
隨宜分表於大坪大小家。使免
溝壑之轉。則政是活人之佛。疇
弟二月念間當歸去。價物伊時
可報償。專恃之如何如何。到任前空簡。
或免虹貫之誚耶。餘萬。方倚馬草草。
不備狀禮。
戊午 正月 十一日。族姪 範休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