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3월 29일, 趙運道와 趙述道는 인척이 상을 당한 슬픔을 위로하고, 집안의 근황을 걱정하며 生員 李宇烈에게 보낸 편지
1795년 3월 29일, 趙運道와 趙述道는 인척이 상을 당한 슬픔을 위로하고, 집안의 근황을 걱정하며 生員 李宇烈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운도와 조술도는 가까운 인척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편지로써 위로 하고자 했는데 늙고 게으른 것이 한꺼번에 밀어 닥쳐 오랫동안 붓과 벼루를 폐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먼저 兄께서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淸和한 3월 春府尊丈께서 寢食은 크게 손상되지 않으시고, 昏定晨省하며 복을 입고 있는 상대방의 체후도 좋고, 舍妹와 群侄 모두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조운도와 조술도는 근래에 衰病이 심해져 문을 닫고 엎드려서 시일만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甥君을 만나 조금이나마 회포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홀아비인 생군의 상황이 염려가 되니 쉽지는 않겠지만 後娶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추록에 惡草[질이 나쁜 담배]를 한 줌 보낸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조운도(1718~1796)와 조술도(1729~1803)이다. 조운도는 본관은 漢陽, 자는 聖際, 호는 月下이다. 조부는 趙喜堂이고, 증조부는 趙頵, 조부는 趙德隣이다. 부인은 李綸의 딸 全州李氏이다. 과거 대신 자신의 수양을 닦기 위한 공부에 전념하였다. 47세에 형제들과 月麓書堂을 지어 후진 교육에 힘썼다. 조술도는 본관은 漢陽이고, 자는 聖紹, 호는 晩谷이다. 1759년 趙進道가 문과에 합격하고도 조덕린의 손자라는 이유로 削科되자 과거를 단념하였다. 1765년 李象靖·金樂行의 문하에 들어갔고, 金宗德·柳長源·李宗洙·鄭宗魯 등과 학문을 교류하였다. 月麓書堂에서 후학을 양성 하였다. 저서로는 『晩谷集』, 불교를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한 『儒釋名分辨』, 서학을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한 『雲橋問答』이 있다.
수신자는 누이의 남편 이우열(1741~1799)로 본관은 載寧이고, 자는 振汝 이다. 편지에서 말하는 촌부존장은 이우열의 아버지인 李周遠(1714~1796)으로 자는 亘甫이고, 호는 眠雲齋이다. \侄은 그의 아들인 李海鵬, 李海鵾, 李海龜 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