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2월 그믐에 趙居信이 안부를 전하기 위해 아버지인 趙進道에게 쓴 편지
1788년 2월 그믐에 趙居信(1749~1826)이 안부를 전하기 위해 아버지인 趙進道(1724~1788)에게 쓴 편지이다.
편지는 재종질의 와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현 거주지에 별일이 없다는 것을 알리면서 다만 자신이 종기를 앓고 있어서 고름을 터트렸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이후 柳室이 다녀간 사실과 洪丈 장례에는 숙비 및 다른 가족들이 참여하나 자신은 종기가 완쾌된 이후에 갈 것이라고 전하였다. 마지막으로는 鯉齋에서의 門接을 초4일에 하니 사촌 發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아버지가 있는 정자에 양식이 떨어져 가니 內行을 급히 보낸다고 하였다. 추신에는 아버지에게 鹿市에서 붓을 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조거신은 조진도의 아들로 조준도에게 양자로 갔다. 그런데 1788년 당시에는 조준도가 이미 別世하였으므로 수신자인 아버지는 生父인 조진도이다. 조거신은 편지를 쓸 당시에 한양조씨 집성촌인 영양 일월면 주곡리(주실마을)에 있은 듯 하며, 조진도가 있는 亭은 이 무렵의 간찰을 통해 볼 때 봉화(조선시대에는 안동)에 있는 四未亭으로 보인다. 門接을 시행하는 鯉齋는 영양읍 하원리 한양조씨 집성촌에 있는 飛鯉齋를 말한다.
발신자인 조거신은 본관이 漢陽, 자는 忠彦, 호는 梅塢이다. 생부는 조진도이고 백부인 조준도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玉川 趙德隣의 증손자이고, 조준도는 조덕린의 長孫이므로 조거신은 조덕린의 宗孫이 된다. 숙부인 趙述道의 문인이며, 평생 은거하여 독서하며 지냈다.
수신자인 조진도는 자가 聖輿, 호는 磨巖이다. 부는 趙喜堂이고, 조부는 조덕린이다. 175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유배된 조덕린의 손자라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되었다. 이후 은거하였다. 1788년에 조덕린이 복관되면서 다시 급제되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