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2월 초7일, 趙居信이 집안일의 상황을 전하고 귀가를 요청하기 위해 부친 趙進道에게 보낸 편지
1780년 2월 초7일에 趙居信(1749~1826)이 집안일의 상황을 전하고 귀가를 요청하기 위해 부친 趙進道(1724~1788)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으로는 먼저, 편지를 받아 행차가 탈 없이 도착한 것을 알게 되어 다행스럽다고 하고, 부친 및 숙부의 안부와 庶母의 병세를 물었다. 자신들은 우선 예전처럼 지내고, 아우의 家役은 재목을 산에서 내리는 것을 마치지 못하여 오늘 또 서까래를 베었으며, 마을 어귀의 石役도 한꺼번에 닥쳐서 군정은 날로 어려워지고 목수는 가서 처할 곳이 없어서 海龍의 집에 들어가 거쳐하고 있지만 편안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마침 일이 많은 때에 어버이 곁을 떠난 형세가 가지가지 근심스러워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 20일 이후에 돌아올 수 없는지를 물었다. 또 서당의 여러 객이 와서 모였는데 일이 많은 때에 이 또한 일이 많아서 편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道伯은 趙時俊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도 豐原府院君[趙顯命(1690∼1752)] 집안의 사람인지를 물었다. 끝으로, 己奴는 아직까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여 지붕을 일 일이 아득하고, 쟁기는 갖추지 못했는데 達龍이 備納하는 데 뜻이 없는데다 그 값 또한 비싸서 봄갈이는 때를 놓칠 것 같아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자인 조거신의 본관은 漢陽, 자는 忠彦, 호는 梅塢이다. 부는 趙遵道, 생부는 趙進道, 증조부는 趙德隣이다. 숙부 鄭述道의 문인이다.
수신자인 조진도의 자는 聖輿, 호는 磨巖, 부는 趙喜堂, 조부는 조덕린이다. 1759년에 문과에 급제했지만 유배된 조덕린의 손자라는 이유로 罷榜되었고, 1788년에 조덕린이 복관되면서 다시 급제되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