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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조술도(趙述道)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777.4776-20180630.0372257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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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조술도, 김〇〇, 김〇〇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777
형태사항 크기: 32.5 X 4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77년 조술도(趙述道) 서간(書簡)
1777년 1월 15일에 영양 주곡조술도(1729~1803)가 김 진사 형제분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둘째 형이 상대방을 방문하는 길에 부친 편지로 발신자는 상대방 형제분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집안에 매우 슬픈 일이 생겨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아직까지 남은 회포가 있다고 하였다. 새해에 형제분들은 담락하시고, ‘박문약례’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산 이상정이 사헌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믿을만한지 묻기도 하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777년 1월 15일에 영양 주곡趙述道(1729~1803)가 해를 맞이하여 상대방의 형제분들이 담락하고 경사를 받길 기원하는 내용으로 金 進士 형제분에게 보낸 편지
1777년 1월 15일에 영양 주곡趙述道(1729~1803)가 金 進士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로, 새해를 맞이하여 상대방의 형제분들이 담락하고 경사를 받길 기원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국상으로 두루 슬프다는 말로 시작한다. 발신자가 頭流 三洞을 보고 돌아가 여러 노형과 더불어 다시 한바탕 정담을 나누고자 했는데 중간에 집안의 지극한 슬픔을 듣고 가는 길을 돌리게 되어 애타게 남은 회포가 마치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새해에 형제분들은 담락하시고 경사를 받으시길 기원한다고 하였다. 이어 본인은 문을 닫고 보내는 것이 이미 50년이 되었는데, ‘溝壑’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는 뜻이 오랫동안 보존하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지금 봄에 날은 길고 일은 없는데, 형제들이 博文約禮한 뒤끝에 반드시 듣게 되는 바가 있을 것이나 한스러운 점은 가깝지 않아 서로 볼 길은 없는 점이라고 하였다. 대산 이상정이 사헌부에 들어가게 된 것을 들었는데 전해들은 말은 믿을만하지 상대방에게 물었다. 시골의 비졸한 본인은 어찌 감히 이와 같은 빛나는 행장을 듣겠느냐고 말했지만, 본인은 산기슭을 지키는 것이 제일 높은 경지가 된다고 하였다. 마침 은거하던 집안의 둘째형이 雲庄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상대방에게 들러 묵을듯하여 그편에 편지를 부친다고 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편지에는 추신이 있는데, 지난번에 본인의 걸음이 급하여 仁里에 조문하고 아직 한 번도 서로 문안하지 못했으니 허다한 망상이 끝내 일을 해칠까 두려우니 괴탄스러움이 끝이 없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쓴 조술도의 본관은 한양, 자는 聖紹, 호는 晩谷이다.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로는 『만곡집』이 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77년 조술도(趙述道) 서간(書簡)

金 進士 注書 聯床侍童。
老兄 謹拜候上狀。 省式謹封。
國哀勻痛。
頭流三洞。而歸歸與
諸老兄。更欲做一場良晤。中間承。同堂至戚。遂
至徑返。耿耿餘懷。殆如食物不下也。新正伏惟
棣床。湛樂。益膺大來之慶。惟是爲禱祝耳。
述道。杜門屛居。已屬五十光景。深恐溝壑之
志。恐不保長遠。奈何奈何。即今春生。日長無事。
壎篪博約之餘。必有所可聞者。恨地不邇。無由
相觀。而善耳。大山聞入憲臺。傳聞信否。
山野鄙拙。何敢聞於此光行藏。而祇有牢
守山樊。爲第一上乘。此老高見。亦應辦此
預足爲慰耳。同人之懷。閑倂及之。幸閟之適
家仲兄。向雲庄。歷路似過宿。憑便草草掛
漏。不宣。伏惟
僉察。謹拜候上狀。
丁酉 正月 十五日。弟 趙述道 拜。

去番鄙行。草草。仁里弔慰。一未相問。
許多忙想。終恐害事。愧歎亡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