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7년 1월 15일에 영양 주곡의 趙述道(1729~1803)가 해를 맞이하여 상대방의 형제분들이 담락하고 경사를 받길 기원하는 내용으로 金 進士 형제분에게 보낸 편지
1777년 1월 15일에 영양 주곡의 趙述道(1729~1803)가 金 進士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로, 새해를 맞이하여 상대방의 형제분들이 담락하고 경사를 받길 기원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국상으로 두루 슬프다는 말로 시작한다. 발신자가 頭流 三洞을 보고 돌아가 여러 노형과 더불어 다시 한바탕 정담을 나누고자 했는데 중간에 집안의 지극한 슬픔을 듣고 가는 길을 돌리게 되어 애타게 남은 회포가 마치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새해에 형제분들은 담락하시고 경사를 받으시길 기원한다고 하였다. 이어 본인은 문을 닫고 보내는 것이 이미 50년이 되었는데, ‘溝壑’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는 뜻이 오랫동안 보존하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지금 봄에 날은 길고 일은 없는데, 형제들이 博文約禮한 뒤끝에 반드시 듣게 되는 바가 있을 것이나 한스러운 점은 가깝지 않아 서로 볼 길은 없는 점이라고 하였다. 대산 이상정이 사헌부에 들어가게 된 것을 들었는데 전해들은 말은 믿을만하지 상대방에게 물었다. 시골의 비졸한 본인은 어찌 감히 이와 같은 빛나는 행장을 듣겠느냐고 말했지만, 본인은 산기슭을 지키는 것이 제일 높은 경지가 된다고 하였다. 마침 은거하던 집안의 둘째형이 雲庄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상대방에게 들러 묵을듯하여 그편에 편지를 부친다고 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편지에는 추신이 있는데, 지난번에 본인의 걸음이 급하여 仁里에 조문하고 아직 한 번도 서로 문안하지 못했으니 허다한 망상이 끝내 일을 해칠까 두려우니 괴탄스러움이 끝이 없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쓴 조술도의 본관은 한양, 자는 聖紹, 호는 晩谷이다.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로는 『만곡집』이 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