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 4월 29일 안동 임하의 柳通源과 柳長源이 종이 묶음을 보내주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수신 미상의 친척에게 보낸 편지
1771년 4월 29일 안동 임하의 柳通源(1715∼1787)과 柳長源(1724∼1796)이 종이 묶음을 보내주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수신 미상의 친척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는 화액이 혹독하게 퍼져 심한 근심으로 슬픈 마음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 士豪의 행차로 문안 편지를 받으니 슬픔이 매우 지극하여 마치 대면하여 듣는 위로의 말과 같았지만 그가 돌아갈 적에 마침 근심스러운 일이 있어 답장 편지를 쓰지 못하여 그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상대방의 근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聖希는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이 많이 여위어졌다고 하니 남모르는 근심을 이길 수 없다고 하면서, 성희의 한 몸은 관계된 바가 가볍지 않으니 부디 몸을 잘 보호하고 아끼어 선친께서 남긴 뜻에 부응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발신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올해 내내 闈慽이 서로 잇따랐으며, 특히 관계가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은 뜻밖으로 집안 가득한 어린 고아를 차마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고요한 거동과 현숙하고 명철한 행동을 어느 곳에서 다시 보겠느냐고 하면서 슬픈 마음을 드러냈다. 또 장사일이 다음달 19일로 정해졌으나 매우 덥고 또 춘궁기를 당하여 장례에 쓰이는 도구는 빠짐없이 다 마련할 수 없어 더욱 고민된다고 하였다. 두 명의 新恩者는 아울러 상을 당했으나 榮掃의 행차는 그만둘 수 없어 나아갔고, 성희도 상중에 있으니 다만 슬프고 서운함만 느낄 뿐이라고 하였다.
종이 묶음은 보내준 대로 받았으니 매우 감사하다고 했으며, 나머지는 바빠 예식을 생략하니 헤아려 달라고 하면서 편지를 마쳤다.
추신은 편지의 본론에 언급하지 못한 이모의 상사에 대한 내용이다. 이모의 상사는 매우 슬퍼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장례는 가을 추수 이후를 기다리는데, 상중에 있는 조카는 지난번에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고 하면서 눈길 닿는 것마다 슬프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따름이라고 하였다.
발신자 류통원과 류장원은 형제이며, 맏형은 류도원이다.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柳觀鉉이다. 맏이 류도원은 큰아버지인 류승현에게, 류장원은 柳信迪에게 각각 입양되어 대를 이었다. 류통원의 자는 叔亨, 호는 笵溪이다. 증손 류치명이 귀하게 되어 司僕寺正에 제수되었다. 류장원의 자는 叔遠, 호는 東巖이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사망하여 류통원의 아들인 柳川休를 후사로 삼았다.
편지의 추록은 연월일과 발신자를 표기한 이후 여백에 쓰는 경우가 다수인데, 이 편지는 추록을 써서 편지에 덧붙여 놓았다.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김명자